영화 ‘호프’가 18일(현지시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상영으로 공개된 이후,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며 뜨거운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의견이 모이는 지점은 분명하다. 영화 초반 약 45분, 외계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의 구간이 극도로 밀도 높은 긴장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초반부를 사실상 홀로 이끌어가는 인물은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 역의 황정민이다. 그는 기이한 존재의 출몰을 목도한 뒤 현실을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해결책을 모색하며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속절없이 “X발!”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관객은 범석을 따라 서사의 세계로 자연스레 진입하고, 이 과정에서 황정민의 원맨쇼는 사실상 영화의 엔진 역할을 한다.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지만, 응집력 있는 연기로 초반부를 지탱하는 모습은 신묘한 수준이다.
18일 칸 호텔 바리에르 르 마제스틱에서 만난 황정민은 “초반 40분은 제가 끌고 가야하는 구조였는데, 그 점이 고통스러웠다”고 돌아봤다. 그는 “관객과 함께 궁금증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400미터 계주로 치면 제가 첫 주자였고, 첫 스타트를 잘 끊어야만 했다”며 “성애(정호연), 성기(조인성)가 등장하기 전까지 관객들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품의 장르적 성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영화는 크리처물이고, 말하자면 ‘마블’ 시리즈 같은 영화”라며 “그 안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범석이라는 인물의 명분과 서사를 어떻게 균형 있게 표현할지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촬영 당시에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전적으로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다”며 “늘 상대방의 눈을 보고 연기하다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상황을 구축해야 하는 점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범석이 끊임없이 욕설(“X발!”)을 내뱉는 설정에 대해 그는 “(나홍진 감독에게) 욕설을 줄여야 관객이 덜 부덤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도 있지만, 그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며 “범석 입장에서 욕은 의성어나 의태어 같은 감정의 분출로 이해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연경 선수의 ‘식빵’처럼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표현이 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범석이 괴수가 동네를 휩쓸고 있음을 알게 되는 초반부 촬영은 전남 해남의 한 마을에서 진행됐다. 세트보다 로케이션 촬영을 즐겨 하는 나홍진 감독의 현장. 황정민은 “실제 주민들이 생활하는 동네에서 촬영했는데, 한 달 넘게 삶의 공간을 비워주셨다”며 “다행히 동네 어르신들께서 재미있어 해주셨지만, 빨리 촬영을 마치고 나가야 한다는 점도 연기에 목표 의식으로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호프’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로 나홍진 감독과의 재회를 꼽았다. 과거 영화 ‘곡성’을 함께 작업하며 인물을 집중도 있게 찍어내는 감독이라는 점을 확인헀고, 다시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집요한 사람을 만나면 끌린다”며 “집요함이 더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프’ 대본을 받은 후 읽기도 전에 출연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나홍진이 SF를 한다는 점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홍진 감독의 연출 방식에 대해서도 높은 신뢰를 보였다. “‘곡성’ 당시 새벽의 파란 하늘 색감을 얻기 위해 이틀이면 끝날 장면을 일주일씩 찍기도 했다”며 “그렇게 찍은 화면은 인위적으로 만든 색감과는 전혀 다르다. 결과물을 보면 일주일 아니라 두달이라도 찍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황정민은 “나 감독은 미학적으로 매우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며 “그 집요함이 결국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된다. 나홍진은 내게 매우 근사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