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창업주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서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총수) 또는 그 친족, 법인을 이른다. 앞서 지난달 29일 공정위는 그간 쿠팡 법인으로 지정돼 있던 동일인을 자연인인 김 의장으로 변경했는데, 1986년 제도 도입 후 기업이 이를 문제 삼아 소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이전부터 재계도 “단지 기업 규모를 이유로 제재하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줄기차게 개선 내지 폐지를 주장해 왔던 터다. 동일인 중심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집중 조명해 본다.
◆재계 “‘갈라파고스 규제’ 개선 내지 폐지해야”
동일인은 기업집단의 범위와 대기업 규제 적용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점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를 기업집단으로 묶어 관리·감시한다. 동일인 단독 또는 특수관계인으로 불리는 동일인 관련자(배우자, 4촌 이내 혈족 및 3촌 이내 인척, 기타 친족 등)와 더해 지분 30% 이상 최다 출자자이면 기업집단에 포함된다. 특히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주식 소유 및 특수관계인 현황, 비상장사의 주요 사항, 대규모 내부거래, 주주 및 임원 구성, 이사회 의결 등 광범위한 공시의무가 생기는데, 바로 동일인이 이행해야 하는 최종 책임자다. 대기업집단에 상호출자·순환출자·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 투자나 의사 결정, 영업활동 관련 규제가 더해지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명목 국내총생산의 0.5% 이상) 준거점 역시 동일인이다.
동일인이 자연인이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사익편취) 금지도 적용받는다. 이에 따라 동일인 및 그 관련자를 합해 지분 20% 이상 보유 중인 국외 계열사의 일반·주주현황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와의 내부거래 현황을 연 1회 공시해야 한다. 또 동일인 및 그 친족이 출자한 계열회사와 상품·용역거래를 하면 수시 공시의무를 지게 된다.
공정위는 1987년부터 동일인 지정을 시작해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한 문어발식 확장, 극소수 지분으로 전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선단식 경영 등 총수 중심의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견제해 왔다.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 자녀나 배우자·친척 등이 지배하는 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일감 몰아주기나 대출 등 부당 내부거래를 경영권 승계에 악용하는 해악도 막아 왔으나 40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런 일률적인 규제가 모두 유효한지 의문이 크다.
먼저 공정거래법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을 금지하는 데도 동일인까지 지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그간 경제규모 확장에 힘입어 주요 대기업집단은 해외에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데도 국내에서 편법적인 경제력 집중과 재벌의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에 따른 경쟁 제한을 억제하는 규제는 수명을 다한 게 아니냐는 진단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법적 근거 없이 개인정보 수집 의무 부과
기업 승계가 대를 넘기면서 상속 등에 따라 사주의 지분율이 분산·희석된 데다 가족 관념도 크게 변했다. 직계가족 외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4촌 혈족까지 함께 기업집단을 지배한다는 가정 아래 법적 근거도 없이 동일인에게 평균 70여명에 달하는 특수관계인의 보유지분과 사업현황 등 개인정보 제출의무를 지우는 것도 부당하다는 원성을 산다. 또 공정거래법이 기업집단 지정자료의 제출 대상자를 ‘회사 또는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했는데도, 공정위가 동일인에게도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관행은 이중 규제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더구나 미제출·허위사실 제출 때는 검찰 고발 대상이 돼 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동일인 및 그 관련자 중 누구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지 묻지 않고 동일인을 처벌하게 돼 있어 헌법상 자기책임 원칙 위반이 명백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미제출 또는 허위 제출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처벌 대상으로 규정, 동일인에게 증명 책임을 떠넘긴 것 또한 헌법상 명확성 원칙의 위반이며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절차적 의무 위반에 불과한 만큼 과태료로 충분한데도 경우에 따라 처벌까지 가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의 위반이라는 반론도 있다.
친족 관계와 무관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에도 획일적으로 자연인 동일인을 지정하는 바람에 불합리한 규제라는 시비를 낳는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그간 몇차례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본인은 4%대 낮은 지분을 보유 중이고, 친인척의 지분도, 이를 활용한 순환출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계를 확립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의장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를 빼면 최다 출자자이고 경영에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 의욕을 감퇴 내지 방해한다는 비판이 빗발치는 대목이다.
공정거래법엔 동일인 정의를 따로 명시한 조항이 없다.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이 컸지만, 공정위는 2021년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이 법인을 동일인으로 하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이 일자 부랴부랴 나섰다. 2024년에서야 5가지 기준으로 구체화했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조건 4가지도 이때 마련됐다. 친족 범위도 ‘혈족 6촌 이내, 인척 4촌 이내’에서 2022년 말 현 규정으로 축소했지만, 현실을 반영 못 한다는 지적을 들어야 했다. 대기업집단 편입 기준인 5조원 이상은 2009년부터 17년째 그대로인데, 그사이 경제규모인 국내총생산(GDP)은 900조원 가까이 늘었고 규제 대상은 48개에서 역대 최대인 102개(소속회사 3538개)로 껑충 뛰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