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와 떨어져 있어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한 생활 문화 양식을 간직한 섬 지역 인구가 급감하면서 섬의 생태와 풍습, ‘섬 유산’을 전승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섬 유산 제도를 도입하고 디지털 기반의 ‘섬박물관’을 건립해 사라져 가는 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 한국섬진흥원 주최로 19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섬박물관의 필요성과 미래 방향’ 전문가 토론회에선 섬박물관의 건립 필요성과 역할, 전시 콘텐츠 등 운영 방향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육수현 섬진흥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마무리한 ‘디지털 섬박물관 기본 구상’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완성품 전시관이 아닌 만들어 가는 디지털 퍼스트 박물관이자 국가 플랫폼”이라는 섬박물관 지향점을 제시했다. 육 부연구위원은 “섬의 유산과 삶, 생태 데이터를 디지털로 먼저 기록해 구조화하고, 가상현실(VR) 등 실감형 콘텐츠를 통해 섬의 공익적 가치를 전시와 교육, 연구로 확산시켜야 한다”며 “관련 법이 없어 사각지대에 있는 섬 유산 제도화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섬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섬 3390개 중 주민이 한 명 이상 등록된 유인섬 480곳의 인구는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섬 유산은 섬의 자연, 생물 다양성뿐 아니라 유·무형 문화 자산도 포함된다. 올해 3월 국가유산청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한 ‘물때’가 대표적이다. 물때는 바닷물의 순환을 인지하는 전통 지식으로, 조류 주기를 역법화한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섬 유산을 조사해 보존·계승하는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육 부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육 부연구위원은 또 연구를 통해 섬박물관 최적의 입지로 유인섬이 277개에 달하는 전남의 목포시를 들며 “체류형 관광 유도 시 20년간 생산 유발 749억원, 부가가치 유발 261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섬박물관 전시 테마로는 ‘환상과 치유의 섬’, ‘인류의 미래로서의 섬’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오창현 전남대 교수(문화인류고고학)는 “건물이 아닌 콘텐츠란 섬박물관 명제는 선구적”이라며 “김을 비롯한 섬 산물이 세계 시장에서 유통·소비되며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전시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온난화, 섬 산물 글로벌 공급망, 섬 관광 등과 관련해 섬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추적해 이에 대응하는 섬 주민들의 선택과 적응 과정이 섬박물관의 주요 전시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유산진흥원의 김한태 헤리티지미디어팀장은 “섬박물관은 섬 유산을 보여 주는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이 미디어 파사드 등 실감 미디어를 통해 섬 유산과 관계를 맺는 참여형 플랫폼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팀장은 구체적 전략으로 섬박물관 내부 정면과 좌우, 바닥 4면에 섬의 풍경을 투사해 공간 전이를 경험하게 하는 ‘보이는 섬’, 내부 후면까지 5면에 수중 생태계 등 바닷속을 생생히 구현하는 ‘보이지 않는 섬’ 등을 제시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디지털 박물관은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 전시가 가능하다”면서도 “실물 소장품이 어느 정도 받쳐 주지 않는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홍보관처럼 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섬진흥원은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섬박물관 기능과 운영 방향을 구체화해 나갈 방침이다. 조성환 원장은 “섬박물관은 섬의 과거를 보존하는 시설을 넘어 사라져 가는 섬의 삶과 기억, 생태와 문화를 국가적으로 기록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는 ‘공공 문화 인프라’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