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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캐릭터보다 우리 애가 낫다…식음료업계, 자체 IP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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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료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달라졌다. 제품 사진만 줄지어 올라오던 자리에 인턴 사원, 카페 사장, 구미호 캐릭터가 등장했다. 소비자는 광고를 본다기보다 한 캐릭터의 하루를 따라간다. 이 흐름 뒤에는 커진 콘텐츠 소비 시장이 있다.

 

일화 제공
일화 제공    

22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년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157조4021억원으로 전년보다 2.1% 늘었다. 수출액도 140억7543만달러로 5.5% 증가했다.

 

캐릭터 소비 기반도 넓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캐릭터 이용자 조사’에서는 캐릭터 상품 이용 경험률이 95.7%, 캐릭터 상품 구매 경험률이 81.5%로 집계됐다.

 

식음료업계가 외부 유명 IP와의 단기 협업에서 벗어나 자체 캐릭터를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깐 빌려온 캐릭터는 빠르게 시선을 끌 수 있다. 하지만 협업이 끝나면 소비자의 관심도 함께 빠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체 캐릭터는 느리게 출발하더라도 오래 남는다. 이름, 직업, 말투, 성격을 쌓아가며 제품과 SNS, 굿즈, 팝업스토어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묶을 수 있다.

 

식음료 기업 일화는 자체 캐릭터 ‘보리’를 앞세워 SNS 접점을 넓히고 있다. 보리는 지난해 8월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처음 공개된 레서판다 캐릭터다.

 

설정은 꽤 구체적이다. 보리는 일화 홍보팀에서 일하는 인턴 사원이다. 공식 인스타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콘셉트로 등장해 갓 입사한 사회초년생의 말투와 행동을 콘텐츠에 녹인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맥콜, 초정탄산수 같은 장수 음료를 젊은 소비자에게 다시 소개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셈이다. 제품을 정면으로 설명하기보다 보리의 일상 안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넣는다. 최신 밈을 활용한 짧은 콘텐츠도 이런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닿는다.

 

일화에 따르면 보리 도입 이후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이전보다 2배 이상 늘며 1만명을 넘어섰다. 보리의 세계관을 반영한 소통형 콘텐츠가 반응을 얻으면서 평균 참여율도 기존보다 44% 증가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팔로워 증가보다 의미가 있다. 브랜드 계정은 대개 소비자가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접점이 끊긴다. 그런데 캐릭터가 계정의 주인공이 되면 소비자는 제품 소식보다 먼저 캐릭터의 다음 행동을 보러 온다.

 

이가영 일화 홍보팀장은 “트렌디하고 차별화된 SNS 운영을 위해 자체 캐릭터 ‘보리’를 선보이게 됐다”며 “맥콜 등 장수 음료 브랜드를 기반으로 형성된 기존 고객층은 물론, ‘보리’를 통해 새롭게 유입된 MZ세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전 세대와의 접점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음료도 브랜드 캐릭터 ‘진토니’를 통해 SNS 운영 방식을 바꿨다. 진토니는 낮에는 차분한 카페 사장, 밤에는 열정적인 바텐더로 활동하는 ‘낮카밤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 설정은 진로토닉워터의 제품 특성과 맞물린다. 낮에는 에이드 같은 카페 메뉴에, 밤에는 하이볼이나 진토닉 같은 주류 메뉴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캐릭터의 하루로 풀어낸 것이다.

 

기존 하이트진로음료 계정은 진토니 전용 채널 성격으로 바뀌었다. 밈을 활용한 콘텐츠, 레시피 소개, 캐릭터 상황극을 통해 제품 활용법을 보여준다. 제품 설명서처럼 말하지 않고, 캐릭터가 직접 만들고 권하고 농담하는 방식이다.

 

별도로 운영하는 브랜드 공식 계정은 ‘음료 덕후를 위한 F&B 매거진’ 콘셉트에 가깝다. 하나의 계정은 캐릭터 친밀도를 맡고, 다른 계정은 제품 정보와 브랜드 신뢰도를 맡는 구조다.

 

이 방식은 식음료 브랜드가 SNS를 쓰는 방식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신제품 출시와 이벤트 안내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캐릭터를 앞세워 소비자가 계정에 머무를 이유를 먼저 만든다.

 

롯데칠성음료의 ‘새로구미’는 자체 캐릭터를 장기 IP처럼 키운 대표 사례다. 롯데칠성음료는 소주 ‘새로’ 출시 당시 구미호 캐릭터 새로구미를 브랜드 앰배서더로 내세웠다.

 

새로구미는 병 라벨과 광고,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등장하며 제품의 세계관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단순한 마스코트라기보다, 브랜드가 왜 ‘새로’라는 이름과 이미지를 갖게 됐는지 설명하는 주인공에 가까웠다.

 

이후 새로구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롯데칠성음료는 ‘새로 살구’ 출시 당시 새로구미의 과거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남성·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하나의 구미호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하며 세계관을 넓혔다.

 

오프라인 경험도 더해졌다. 롯데칠성음료는 2026년 3월 서울 성수동에서 ‘새로중앙박물관’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새로 소주 천년의 비법서’를 찾는 방탈출형 체험 공간으로, 소비자가 새로구미 세계관 안으로 직접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이런 방식은 제품 출시 때마다 새로운 광고 문구를 만드는 것과 다르다. 한 번 만든 캐릭터를 중심으로 신제품, 팝업, 굿즈, 영상 콘텐츠를 계속 연결한다. 소비자는 제품을 마시는 동시에 브랜드의 다음 이야기를 따라간다.

 

식음료업계의 자체 캐릭터 전략은 기존 컬래버레이션과 결이 다르다. 유명 캐릭터를 빌려오면 초반 주목도는 빠르게 올라간다. 대신 협업 기간이 끝나면 브랜드 안에 남는 자산은 제한적일 수 있다.

 

자체 캐릭터는 처음부터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출발하지 않는다. 운영도 더 손이 간다. 말투를 정해야 하고, 세계관을 이어가야 하며, 소비자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계속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기업들이 자체 캐릭터를 키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브랜드가 직접 소유한 캐릭터는 제품이 바뀌어도 남는다. 채널이 인스타그램에서 팝업스토어로 옮겨가도 같은 얼굴로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이제 브랜드의 일방적인 설명보다 캐릭터가 보여주는 말투와 행동에 더 쉽게 반응한다. 귀여운 외형은 입구일 뿐이다. 오래 남는 건 캐릭터가 가진 성격과 이야기다.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자체 캐릭터는 단기 이벤트보다 운영 난도가 높지만, 브랜드가 직접 키울 수 있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며 “앞으로는 캐릭터를 얼마나 귀엽게 만드느냐보다 소비자가 계속 보고 싶어 할 이야기를 얼마나 꾸준히 쌓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