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자 클럽 축구의 새 역사를 쓴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리유일 감독이 우승의 기쁨을 뒤로한 채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 한국 기자가 사용한 ‘북측’이라는 표현이 화근이었다. 리 감독은 공식 국호를 사용해달라며 강하게 항의한 뒤 더 이상의 질의응답을 거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내고향은 23일 오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결승전에서 도쿄 베르디 벨레자(일본)를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후 리유일 감독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우승 소감 등을 밝혔다.
그는 먼저 “창단한 지 14년밖에 안 된 내고향이 아시아 일등이 됐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당에 감사했다. 그러고는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어려운 고비들 이겨내면서 감독의 지휘에 따라준 우리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면서 “우리가 오늘 일등하도록 성심성의로 지지해주고 받들어준 우리 모두의 가족들과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내고향은 이번 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난 17일 입국했다.
북한 축구 선수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다. 대표팀이 아닌 북한 여자 축구 클럽팀이 방한한 것은 내고향이 처음이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어땠는지 묻자 리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 조치로 우리가 이번에 여기와 경기했다”면서 “저는 물론 우리 선수들 모두가 오직 오늘의 승리를 위해 분과 초를 아껴가면서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가 소기의 성과 달성할 수 있었다. 오직 축구, 우승, 우리의 발전에만 신경 썼다. 기타 이런저런 일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내고향은 이번 우승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클럽 챔피언스컵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리 감독은 “내고향은 역사가 대단히 짧은 팀인데 오늘 우리가 아시아 일등팀으로서 세계로 진출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면서 “감정, 격정, 이런 거는 이루말할 수 없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순조로웠던 기자회견은 한 기자의 질문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한국 기자가 “‘북측’ 여자축구가 과거부터 수준이 높다”며 질문을 시작하자 리 감독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졌다. 리 감독은 통역관을 통해 ‘북측’이라는 호칭에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고, 통역관은 곧바로 “국호를 바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통역관은 “국호를 바르게 해달라”더니 이내 “저 사람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리 감독의 의사를 전했다.
리 감독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회견장을 떠나 버렸다.
리 감독은 앞서 북한 대표팀을 이끌고 나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한국과 8강전 승리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한국 기자가 북한을 “북측”이라고 칭하자 “북측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