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오지 않은 시기에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변하며 잎이 떨어지는 이변이 발생했다. 조사 결과 ‘범인’은 은행나무와 담벼락을 공유하던 미술관이 대량으로 꽂아넣은 제초제였다.
서울환경연합은 2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앞에서 부암동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나무가 환기미술관에 의해 ‘독살’당했다”며 미술관 측을 규탄했다.
주민들이 추정 수령 약 200년에 달하는 이 은행나무에서 이변을 느낀 건 최근이다. 은행나무 앞을 자주 지나갔다는 주민 홍세진씨는 지난주에 5월임에도 갑자기 나뭇잎이 대량으로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의아함을 느낀 홍씨가 나무 주변을 살폈고, 그곳에서 약물을 투여하기 위해 드릴로 뚫은 구멍과 11개의 수간주사 캡을 발견했다. 홍씨 외에도 노랗게 변한 나뭇잎에 이상함을 느낀 주민들이 모여 종로구에 문의했으나 종로구 측은 나무가 사유지에 위치해 구청에선 처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남겼다.
제초제는 미술관이 나무를 제거하기 위해 쓴 수단이었다.
주민들이 22일 경찰과 함께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이들은 환기미술관 측 조경업체 직원들로 밝혀졌다. 환기미술관이 ‘독살’을 시도한 건 나무를 제거해야 하지만, 나무 소유주는 아니었던 탓이다. 나무가 위치한 도로부지는 현재 소유주만 40여명이 등록된 공동사유지다. 미술관은 해당 나무 뿌리가 자라 맞닿은 미술관 담벼락 밑을 파고들고 담장에 금이 가게 하자 제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 측은 앞서 구청 민원, 토지 소유주와 접촉 등을 시도했으나 제거에 실패했다. 한 주민은 “종로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민원을 받은 구청이 정밀 안전 진단을 했으나 담벼락이 갈라진 것은 나무와 전혀 무관했다고 한다. 담벼락 위에 갈라진 부분이 있지만, 이는 5년 전 사진에도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 제거에 실패한 미술관은 세 번째 방법으로 제초제를 택했다.
나무 상태를 확인한 우종영 수목 수리기술자는 “은행나무는 제초제 냄새만 맡아도 죽는다는 말이 있다. 현재 나무가 하단은 살아 있지만 윗부분은 이미 죽은 상태다. 제초제를 투입한 지 오래돼 살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우씨는 “45도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 원액을 넣었는데, 비가 내리면 그대로 흘러내릴 수 있다. 기화돼 주민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지표수로 흐를 수도 있다”며 관의 대처를 당부했다.
주민들은 환기미술관과 종로구에 은행나무 복원 및 치료, 공식 사과 및 복원 비용 부담, 종로구 보호수로 지정해 보존 등을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