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8월 미국 수도 워싱턴에 모인 약 25만명의 시민 앞에서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가 행한 연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연설로 꼽힌다. 특히 “나에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라며 흑백 인종 차별이 없어진 세상이 오길 기원하는 대목이 백미(白眉)로 통한다. 이 연설문 초안은 킹의 핵심 측근인 클래런스 존스 변호사가 작성했다. 훗날 존스는 “내가 쓴 초안에도, 킹 목사의 검토를 거친 최종본에도 ‘아이 해브 어 드림’이란 문장은 없었다”고 밝혀 킹이 즉흥적으로 지어낸 표현임을 세상에 알렸다.
킹의 전담 변호사이자 연설문 작성 비서였던 존스가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2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존스는 지난 22일 캘리포니아주(州) 쿠퍼티노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의 자녀들은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양심의 삶을 살았다”고 추모했다.
존스는 1931년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1949년 고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인종 장벽을 허물자’는 내용의 빼어난 연설을 해 지역 사회 흑인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뉴욕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과 보스턴 대학교 로스쿨을 거쳐 1959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킹과의 인연은 1960년 시작됐다. 당시 킹은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존스가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킹은 자신이 유리한 판결을 받는 데 기여한 존스를 신뢰했다. 존스는 “나와 함께하자”는 킹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의 전담 변호사 겸 연설문 작성 비서로 일하며 자연스럽게 흑인 인권 운동에도 관여했다.
1963년 4월 킹이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시위 금지령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킹은 수감 도중 그의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서한을 자필로 썼고, 존스가 이를 비밀리에 외부로 유출했다. 해당 글은 ‘버밍햄 감옥에서 온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라는 제목의 인쇄물로 만들어져 미 전역에 배포됐다.
그해 8월 워싱턴에서 흑백 인종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킹은 ‘아이 해브 어 드림’ 연설로 시위대는 물론 미국인 전체를 감동시켰다. 이 연설문 초안을 썼던 존스는 2013년 ‘아이 해브 어 드림’ 연설 50주년을 맞아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쓴 초안에도, 킹 목사의 검토를 거친 최종본에도 ‘아이 해브 어 드림’이란 문장은 없었다”고 고백했다.
존스에 따르면 당시 시위대 앞에 있던 가스펠 가수 마할리아 잭슨이 킹을 향해 “그들(시위대)에게 꿈에 관해 들려줘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직후 킹은 준비된 원고에서 벗어나 “나에겐 꿈이 있어요”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즉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존스의 기억이다.
킹이 사망하기 꼭 1년 전인 1967년 4월 뉴욕의 한 교회에서 행한 베트남 전쟁 반대 연설도 존스가 초안을 마련했다. ‘베트남을 넘어서’(Beyond Vietnam) 연설문으로 불리는 이 글은 반전(反戰) 운동의 기념비가 됐다.
1968년 4월 킹이 암살을 당한 뒤 존스는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 투자 은행 등에서 일했다. 동시에 인권 운동과 킹 기념 사업 등에도 계속 참여했다. 2007년 존스는 킹에 대해 “지난 400년간 미국에서 정의를 이루는 데 킹 목사보다 더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있다면 18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뿐”이라고 평가했다.
2012년 존스는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로스쿨 교수가 돼 학생들에게 인권법 등을 강의했다. 2024년 5월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존스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