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일 꽃 사진, 산 정상 사진만 올라오던 친구들 메신저 ‘프사’가 애니메이션풍(風), 그것도 인기 애니메이션풍의 그림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일이 있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를 이용해 사진을 애니메이션풍 그림으로 변환하는 것이 유행이라더니, 최첨단 기술의 일상화가 내심 새로웠다.
‘프사 꾸미기’뿐만 아니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세금을 신고하거나 법률 상담을 받아 셀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예사이고, 하다못해 인생 고민을 상담하거나 사주를 묻는 이들도 있다.
일상에서 AI의 신세계를 누리는 동안 산업에도 AI 붐이 계속됐다. 세계 최대 ICT 전시회 CES에서는 올해 AI를 빼고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피지컬 AI는 CES 전반을 관통하는 화두였다. 기술 경쟁력 과시를 넘어 실제 산업 분야, 생활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진짜’ 기술들이 주를 이루며 전 세계가 놀라기도 했다.
이제 AI는 도입할지 말지 고민할 기술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가 밟아야 할 다음 스텝이 되었다. 농업 또한 자연스럽게 AI 시대에 접어들었다. 우리 농업은 고령화와 인력 부족, 기후변화라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AI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 줄 마법은 아니지만 시급한 현안 해결은 물론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바꿀 게임체인저이자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과 식량 안보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AI를 조금 더 빨리, 제대로 농업·농촌에 안착시키려면 AI가 작동할 수 있는 생태계부터 조성해야 한다.
우선은 데이터다. 특히 농업은 토양이나 기상 등 환경을 비롯해 작업, 유통, 경영 등 여러 분야의 데이터가 종합적으로 쌓이는 산업으로 데이터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이러한 데이터가 많이 쌓일수록 AI의 성능은 더욱 높아지고 국민 체감 효과도 높아질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농업기술데이터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진, 영상 등 비정형 데이터까지 수집 범위를 확대하고 2027년까지 30억건 이상의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해 이를 민간에 개방할 계획이다. 품질 관리, 관계 부처와의 협업으로 데이터 신뢰도와 활용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클라우드 확보와 슈퍼컴퓨터 3호기 도입으로 AI 학습·분석을 위한 컴퓨팅 자원을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AI 역량과 농업 전문성 모두를 갖춘 인재도 양성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데이터 기반의 농산물 수급 안정화 정책 지원, AI 비서 ‘AI이삭이’ 서비스의 확대, 피지컬 AI 등을 적용한 무인 농작업 기술 구현 등도 포함된다. 농업인과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AI 해법을 제공해 농업 현안을 빠르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영장류 ‘호모 파베르’다.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영장류가 될 수 있었다. 석기와 바퀴를 넘어 증기기관,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구가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고 현실을 눈부시게 바꿔 놓았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쥐어졌다. 물론 AI로 당장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나 수익이 10배, 100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농업인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실패 우려를 줄여주는 것부터 시작해 차차 데이터가 쌓이고 현장에 맞게 기술이 고도화되면 AI는 농업의 부가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도구로서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