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 HMM 나무호를 공격한 배후로 이란을 사실상 지목하면서 한·이란 관계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중동 긴장 국면 속에서도 이란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외교가의 충격도 적지 않은 분위기다. 한국은 지난 2월28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란에 특사를 파견한 사실상 유일한 국가였고, 전쟁 기간에도 테헤란 주재 대사관을 철수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건이 양국 간 신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배후 지목한 이유는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은 27일 브리핑에서 나무호를 타격한 것은 이란에서 개발된 누르(Noor) 계열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전문가들은 아랍에미리트(UAE) 현지에서 나무호 잔해와 선체 손상 부위를 조사했고, 지난 15일부터는 국내로 들여온 잔해 수거물을 정밀 분석했다.
외교가에서는 미사일이 두 발 발사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 경고 사격이나 오인 사격이 아닌 선박을 확실하게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날 합동조사단 일원으로 브리핑에 동석한 류윤상 국방부 국제차장(해군 준장)도 “두 발을 쐈다는 것은 피해를 입히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가 공개한 나무호 타격 비행체의 구성품도 이란이 배후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공개된 구성품 중에는 비행체 제조사 ‘TEM’ 각인이 찍인 것이 있다. TEM은 이란 공기업인 이란항공산업(IACI) 산하 기업인 터빈 엔지니어링 매뉴팩처링(Turbine Engineering Manufacturing)을 뜻한다. 해당 기업은 누르 미사일에 쓰이는 톨루에4 엔진과 더불어 무인기 등에 쓰이는 터보팬·터보제트 엔진을 개발·제작해왔다.
정부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번 사건의 책임이 이란에 있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밝혔다. 외교부는 브리핑 이후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재발 방지 및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쿠제치 대사는 “개인적으로 이 한국 선박(나무호)에 발생한 그런 피해에 대해서 유감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면서도 나무호 공격 사실을 부인하며 이란의 개입 가능성을 전면 일축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란 측이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후속 대응 조치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란 정부가 나무호 피격 사실관계 자체를 계속 부인할 경우, 정부 입장에선 추가적인 대응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부, 외교적 대응에 초점
정부는 나무호 피격은 이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도 공격의 고의성 여부나 한국 선박을 겨냥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양국 관계와 더불어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갇힌 한국 선박 25척의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나무호 피격 사건과 관련, 외교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면서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있는 선박의 안전한 통행을 위한 노력도 병행할 방침이다. 박 차관은 “저희가 관련 소통을 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 결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라며 “우리 선원의 안전과 선박의 안전한 항행, 이런 문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향후 호르무즈해협 항행 안전 확보 차원에서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중동 해역을 운항하는 국내 선박 보호 대책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추진 중인 호르무즈해협 항행 자유 구상과 영국·프랑스 주도의 해상안보 협의체 참여 문제 역시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기존의 신중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정보 공유나 해상 감시 협력 수준의 참여 확대는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