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추진 중인 단계적 휴전·핵협상 과정에서 ‘이란 재건 계획’ 구상이 논의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다만 이란 강경파 진영에서는 “미국이 자금 집행과 사용처를 통제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우라늄 농축 제한과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를 두고도 “전쟁에서 얻지 못한 것을 협상으로 미국에 넘겨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7일 이란 국회의원 말렉 샤리아티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세예드 마흐무드 나보비안 이란 국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협상대표단장 겸 국회의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에는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14개 조항 제안’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겼다.
이란 의회 내 대표적 강경파로 분류되는 나보비안 부위원장은 “미국이라는 테러 국가가 이란 민족에 가한 침략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며 “2000억달러 규모의 기금 조성을 검토한다는 내용만으로는 이란의 피해를 보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자금 사용처에 조건을 달거나 국가 재정 지출 방향에 개입할 수 있다”며 “결국 미국의 영향력 확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란이 요구하는 미국의 전쟁 배상금을 실제로 받아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미국 주도의 재건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대안 형태로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이 참여하는 재건기금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사실상 ‘배상금의 대체재’ 성격을 띨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란은 그동안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카타르 등에 묶여 있던 동결자금 해제를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로 제시해왔다. 실제 2023년 한국 내 이란 동결자금 약 60억달러는 스위스를 거쳐 카타르 계좌로 이전됐지만, 이후 가자전쟁이 발발하면서 사실상 다시 사용이 제한된 상태다.
나보비안 부위원장의 서한에는 이란중앙은행과 이란혁명수비대에 대한 미국 재무부 제재 완화를 사실상 압박하는 취지의 문구들도 담겼다. 그는 “왜 제재 해제가 ‘현재의 제재’로 제한돼 있느냐”며 “이는 결국 미국이 앞으로 새로운 제재를 언제든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이란이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이란의 의무 이행 시작 이전에 헤즈볼라, 이라크 저항세력, 예멘 안사룰라(후티), 하마스 및 기타 저항축 세력을 테러단체 명단에서 해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이 헤즈볼라 등에 대한 제재를 실제로 해제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에서, 이란 내부에서는 이를 이란중앙은행과 이란혁명수비대에 대한 제재 완화를 압박하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이란중앙은행이 이란혁명수비대와 헤즈볼라 자금 조달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미국 재무부의 대테러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후 한국과 이란 간 원화-리얄화 결제 시스템도 중단됐다. 같은 해 미 국무부는 이란혁명수비대 전체를 해외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이란이 한국 선박 HMM ‘나무호’를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과 관련해 거론되는 업체인 터빈 엔지니어링 매뉴팩처링(TEM) 역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특별제재대상 명단에 올라 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란 강경파가 이번 협상 과정에서 대폭적인 세컨더리 제재 완화와 함께 이란 경제의 핵심축인 이란중앙은행 및 이란혁명수비대 관련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한다.
서한에는 우라늄 농축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담겼다. 나보비안 부위원장은 “미국이 시간을 끌며 이란 핵 프로그램만 동결시키고 역내 군사 압박은 유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란은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으로 평화적 핵 활동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며 “왜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특히 의료·농업·발전·담수화 등 민간 핵 분야까지 미국과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란 주권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