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고향’ 대만을 방문해 연간 1500억달러(약 225조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폭탄을 던졌다. 설계부터 파운드리(위탁생산), AI 서버 제조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AI 밸류체인을 대만 중심으로 모으겠다는 구상이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타이베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대만 본부 기공식 행사에서 “4~5년 전 연간 100억~150억달러 수준이던 대만 투자가 이제 1000억달러를 넘어 150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며 “대만은 칩과 패키징, AI 슈퍼컴퓨터가 모두 만들어지는 AI 혁명의 진원지”라고 강조했다. 대만 타이난 출신으로 9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황 CEO는 이날 부모와 아내, 자녀 등 일가를 모두 동반해 타이베이를 찾았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착공하는 엔비디아 대만 본부는 완공 후 4000명 이상을 고용할 예정이며, TSMC를 비롯해 폭스콘, 위스트론, 콴타컴퓨터 등 대만 현지 AI 서버 제조 파트너들과의 연대를 확장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된다.
동맹 전선을 다지기 위한 황 CEO의 행보는 전방위로 전개됐다. 황 CEO는 기공식 전날 웨이저자 TSMC 회장과 친융페이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 수석부사장 8명 등 TSMC 핵심 수뇌부를 대거 초청해 만찬 회동을 가졌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엔비디아와 6위 TSMC의 이번 만남은 신형 ‘그레이스 블랙웰’과 차세대 ‘베라 루빈’ 등 엔비디아 AI 칩의 원활한 공급과 공급망의 최대 병목 구간으로 꼽히는 첨단 패키징 증설 방안을 확약받기 위한 전략적 자리로 분석된다.
황 CEO는 회동 직후 “향후 반년은 매우 바쁠 것”이라며 “필요한 모든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TSMC는 엔비디아의 폭증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올해 설비투자(CAPEX)의 10~20%를 코오스(CoWoS) 등 첨단 패키징 기술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황 CEO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웨이저자 회장과 함께 포장된 볶음면과 음료를 시민들에게 직접 나눠주기도 했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방한 당시 한국 재계 총수들과 치킨과 맥주를 곁들인 이른바 ‘깐부회동’을 한 뒤 시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장면을 연상케 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엔비디아와 대만 TSMC 수뇌부가 첨단 패키징 증설 등을 논의하기 위해 긴밀히 밀착하면서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의 대만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AI 진영의 다른 한 축인 AMD 역시 지난 21일 대만 AI 분야에 100억달러(15조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대만의 글로벌 반도체 허브 지위는 한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엔비디아와 AMD 모두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 계획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양극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대만이 설계부터 최종 조립까지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통합 거점으로 고속 질주하는 사이,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하위 부품 공급 역할에만 갇히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편 엔비디아와의 밀착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TSMC는 내부 단속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성과급 삭감 루머가 돌자 당초 예정된 출장까지 취소한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사내 메일을 통해 전년 동기 대비 30% 늘어난 1분기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직접 밝히며 직원 달래기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