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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가면무도회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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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표현주의 화가 제임스 엔소르의 그림이다. 꽃장식의 중절모를 쓴 엔소르 주변으로 세상의 온갖 감정을 담은 얼굴 가면들이 가득하다. 아래쪽 다섯 명의 여인 얼굴에는 오만함과 탐욕이 넘쳐흐른다. 화면 중앙 사선으로 줄지은 얼굴들은 눈과 입 모양으로 조롱과 멸시의 표정을 짓고 있다. 화면 위쪽 빼곡하게 자리 잡은 작은 가면들에는 공포와 증오심 가득한 얼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 죽음을 상기시키는 해골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섬뜩함을 자아낸다. 마치 가면무도회에 둘러싸인 엔소르의 자화상 같다.

엔소르는 벨기에 북부 항구도시 오스텐더에서 태어났다. 북해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접한 작은 도시인데, 해마다 여름이면 벨기에 왕실 사람들과 영국 상류층들이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찾는 관광 명소였다.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표현하면서 벌인 전통 축제도 이때 열렸다. 엔소르가 그때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의 가면들을 그렸다.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엔소르’(1899)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엔소르’(1899)

그는 10대 시절에 브뤼셀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대 시절에는 자신이 벨기에 출신 바로크 미술 거장인 루벤스 이후 최고의 화가라는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미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표현주의로 향했다.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이런 선구적인 태도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지나친 자만심이 문제였다. 엔소르는 젊은 시절을 정신적인 고통과 경제적인 궁핍으로 찌들어 살아야만 했다. 19세기 말, 그가 40대로 접어든 비교적 늦은 나이에 조금씩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기말의 불안과 위기의식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표현주의가 미술의 새바람으로 사회에서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은 세상의 모습을 감정이 담긴 얼굴 가면무도회처럼 표현한 엔소르의 이 그림도 그제야 주목을 받았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