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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투우라는 도착적 죽음의 무대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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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 우리는 밤의 들판에 서 있는 강인한 뿔을 가진 수소를 본다. 부동의 자세로 카메라 앞에 정지해 있던 소는 이내 자신의 공간을 유유히 돌아다닌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에 우리는 한 생명의 묵직한 존재감을 느낀다. 다음 장면, 경기를 마친 투우사 일행이 밴 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앞 좌석 중앙에 앉아 있는 젊은 마타도르는 거의 말이 없다. 텅 빈 듯한 공허감에 잠겨 있는 이 인물은 페루 출신의 젊은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이다. 이제 장면은 호텔로 바뀐다. 호텔에서 안드레스는 피에 젖은 투우복을 벗고 그의 앞에는 눈물을 흘리는 성모화가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영화의 중심 무대인 투우 경기장으로 이동한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호텔, 밴, 경기장, 세 장소만을 오간다. 투우사의 세계에는 이 세 공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현대 스페인 영화의 거장 알베르트 세라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고독의 오후’ 이야기이다.

특유의 분위기와 스타일로 죽음과 소멸, 욕망에 대해 탐구해 온 현대 스페인 영화의 거장 알베르트 세라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소재가 왜 투우일까, 라는 점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가진 궁금증이었다. 투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서 스페인 현대사와 연결된 역사적 논쟁거리이기 때문이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독립을 열망해 온 지역이다. 프랑코 독재 정권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반대자인 카탈루냐는 그 영향으로 반(反)투우 정서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카탈루냐 출신인 알베르트 세라는 어떤 시선으로 투우에 접근하려 했을까?

영화에는 다큐멘터리에 흔해 빠진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시종일관 안드레스와 소에 밀착한 관찰자 시점의 카메라가 있을 뿐이다. 전형적인 관찰영화, 다이렉트 시네마 기법이다. 카메라는 호텔에서, 차 안에서, 경기장에서 오직 소와의 대결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안드레스와, 그와 상대하는 소에 집중한다.

상투적인 스펙터클은 없다. 인간과 소의 거친 숨결. 상대의 공격 본능을 자극하고 유인하는 마타도르의 몸짓, 표정과 온몸에 선혈을 흘리면서 마타도르가 흔드는 물레타를 향해 본능적으로 돌진하는 소의 목숨을 건 대결이 있을 뿐이다. 이 죽음의 무대는 애초부터 불공정하다. 마타도르 역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죽음의 무대에 서 있지만 이 불공정한 게임의 룰에서 소가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후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소는 두 귀를 잘린 채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가고 마타도르는 소의 귀를 번쩍 들어 승리를 자축한다. 난감한 것은 심장을 옥죄는 이 잔혹한 죽음의 무도가 거부하기 힘든 도착적 미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마초성이 흘러넘치는 폭력의 제의에 초대된 관객은 압도적인 스릴과 긴장감, 도착적 아름다움에 깃든 공허함과 텅 빈 죽음의 기운에 불편함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다. 그 복잡한 감정 속에서 관객은 누구의 조언도 없이 스스로 사유의 결론을 내야 한다. 당신의 결론을 내라. 그것이 알베르트 세라가 다시 한번 관객에게 던져놓은 불편한 제안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