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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의 선견지명] 두물머리, 두미진, 도미나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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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이 안반여흘을 지나 사포(蛇浦)에서 남한강과 합류해 ‘팔당(八堂·바댕이)’으로 들어가는 지역을 두물머리(일명 양수리)라고 하며 이 강/하협(河峽)의 이름을 두미강(斗尾江) 혹은 두미협(斗尾峽)이라고 한다. 두물머리에서 조안면 안쪽 능내리를 돌아 팔당으로 들어서면 한강이 눈에 띄게 확 좁아지는데, 양쪽에 팔당 절벽과 검단산의 암벽이 있고 바닥이 단단한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그래서 이곳을 ‘바댕이’라고 하는데 팔당은 이 ‘바댕이’를 한자로 쓴 것이다) 갑자기 물살이 빨라진다.

이곳은 예전부터 두미강 혹은 두미협이라 불렸는데 그 역사가 만만치 않다. 두미강의 한쪽 끝 검단산 끝자락에는 도미진(都彌津) 즉 ‘도미나루’라는 곳이 있다. 옛날 백제 개루왕 때 도미라는 이가 아름다운 아내와 살고 있었는데 개루왕이 도미의 아내를 탐내어 도미의 눈을 빼서 배를 태워 강물에 띄워 보내고 도미의 아내(일설에는 ‘아랑’이라고 한다)를 범하려 했으나 도미의 아내가 기지를 발휘해서 개루왕을 피해 강가로 달아난다. 이때 마침 강 위에서 빈 배가 내려와서 그 배를 올라타니 배가 가다가 천성도(泉城島)라는 섬에 도달했는데 그 섬에서 아직 살아 있는 남편 도미를 만나게 되어 고구려로 넘어가서 유리걸식하다가 결국 고구려의 산산(蒜山·마늘산)이라는 곳에 가서 정착했다는 이야기이다. 훗날 도미와 도미의 아내가 백제를 떠난 나루터의 이름을 도미나루라 했다는 전설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의 도미 설화에 나오는 나루터는 ‘용비어천가’ 같은 후대의 자료에는 두미진(斗尾津) 즉 두미나루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본래 이 지역이 두미강(두물강) 앞에 있는 나루터였기 때문에 ‘두미나루’라고 부르다가 후대의 누군가가 백제의 개로왕을 비난하기 위해 ‘도미’라는 이름의 신하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수 있다.

‘도미(渡迷)나루’로 알려져 있는 ‘·두미津’은 ‘둘’의 이형태 ‘두’와 ‘물/강’의 고구려 어형 ‘미’의 합성어로 볼만한 단어이다. 김양진(2008)에서는 ‘도미’ 설화에 연결되어 있는 ‘·두미津’ 설화가 기실 ‘두 물 나루’라는 의미에서의 ‘두미津’이라는 지명에 부회(府會)되어 만들어진 후대형 이야기일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즉 백제어로 지명 ‘두미진’이 먼저 생겼고 훗날 신라가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그 땅이름(백제식 단어)의 뜻을 알 수 없게 되면서 혹은 백제의 왕을 악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후대에 덧붙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이름이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 이름으로 둔갑한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땅이름 중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