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르무즈해협에서 HMM ‘나무호’를 타격한 비행체가 이란산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청와대는 28일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외교부가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외교 대응에 나섰음에도 청와대가 공개 메시지를 자제하는 것은 중동 정세 악화 속에서 현지 한국 선박과 국민의 안전, 향후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캄보디아 스캠 사태와 우리 국민이 탑승한 선박에 대한 이스라엘의 나포 사건과 관련해 ‘한국인을 건드리면 패가망신하게 하겠다’며 강도 높은 자국민 보호 메시지를 낸 바 있다. 그렇지만 이번 국면에서는 이란과의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섣불리 대응 수위를 높이기는 어려운 만큼 청와대가 메시지를 자제하고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외교적 요인들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이란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정부가 그간 이란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온 데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할 경우 호르무즈해협에 갇혀 있는 한국 선박들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향후 호르무즈해협 통과와 관련해 우리 선박들에 불이익이 생기는 등 부정적인 여파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들로 청와대는 나무호 타격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이란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추측을 자제하며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전문가들도 대사 초치 등 외교적 메시지는 단호하게 내되 추가 강경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란혁명수비대의 독자적 행동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다 여전히 현지 해역에 한국 선박과 선원들이 남아 있는 만큼 관계 악화보다 재발 방지와 항행 안전 확보에 외교적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해가 발생한 만큼 정부가 단호한 메시지를 내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지나치게 강경하게 대응할 경우 위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가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를 즉각 초치해 항의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었다”며 “대사 초치 자체가 외교적으로 상당히 강한 공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AP통신
김혁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도 “지금은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키기보다 재발 방지와 선박 안전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친 강경 대응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호르무즈해협과 같은 군사적 긴장 지역에서는 혁명수비대가 상당한 독립권을 갖고 움직이는 구조”라며 “이란 외교부와 혁명수비대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전시 상황 속 오인 가능성에 가까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김혁 교수는 “피격 당일 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발표 직후 긴장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이었다”며 “혁명수비대가 과잉 대응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20년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여객기 격추 당시에도 이란 행정부는 초기 개입 사실을 부인했지만, 이후 혁명수비대가 오인 사격 사실을 인정하며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고 덧붙였다.
군사 대응 확대론에 대해서도 신중론이 우세했다. 김혁 교수는 “지금 당장 군함을 보내는 것은 실익보다 긴장 고조 가능성이 더 크다”며 “영국·프랑스 중심의 해상안보 논의 역시 종전 이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태형 교수도 “미국 주도의 대이란 압박 구도에 한국이 단독으로 휘말리는 모양새는 전략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다국적 협의체 차원의 제한적 참여 정도가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