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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이대로 괜찮은가” [경제적 질문]

경제.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도탄에서 구한다’는 뜻의 경세제민을 줄인 말입니다. 뜻은 명쾌하지만 경제를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정부 재정과 세제부터 환율,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소한 개념이 나오는 것은 물론 ‘정답’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포기할 순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분야니까요. ‘경제적 질문’은 이처럼 중요하지만 접근이 쉽지 않은 ‘경제’에 다가가려는 노력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늘의 질문은 “정규직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이대로 괜찮은가”입니다.

 

이 질문을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었습니다. 1인당 최대 6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노사 합의안은 ‘성과급’이 쟁점이기 때문에 사실 정규직이 받는 임금 문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주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연동돼 오르는 현행 연봉제(호봉제) 구조가 우리 노동시장에서 초래하는 각종 부작용을 고려하면, 이참에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대기업 초과이윤 문제 등과 함께 논의 테이블에 올려볼 만합니다.

 

한국의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 대해선 대내외 주요 기관 모두 비판적입니다. 우선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한국의 건강한 노화와 노동시장 참여’(Healthy Aging and Labor Market Participation in Korea) 보고서를 주목할 만합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고령층 건강상태가 개선되면서 우리 고용시장에서 2006~2020년 일하는 고령층이 연간 1.9%포인트 추가로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는 고령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대다수 고령층이 휴식 대신 고용시장에 남으려고 하는 배경엔 자아실현보다 생계유지라는 절박한 이유가 깔려 있습니다. IMF는 한국에서는 연공서열 중심의 경직적인 임금 체계 탓에 법정정년(60세)은커녕 이보다 한참 전인 55세 이전에 은퇴하는 이들이 상당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생산성과 상관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늘어나다보니 비용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조기 퇴직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은퇴한 노동자는 주로 아르바이트, 임시직 등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령층의 소득 수준은 크게 낮아지게 됩니다. 실제 은퇴 후 고령층의 근로 소득은 급감합니다. 은퇴 후 연금 지급전까지 기간을 일컫는 ‘소득 크레바스’ 시기 고령층의 근로소득은 이들이 버는 전체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다수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24년 발표된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직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중장년 노동시장의 현황과 개선 방안’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한국은 중장년층 정규직 노동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주요국보다 유독 낮은 특성을 보입니다. 인구 대비 정규고용 비중(2019년 기준)은 55~64세 남성은 3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7.2%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오히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근속연수(중위)가 연령과 함께 안정적으로 증가한 반면 한국은 남성의 경우 50대부터 급락하고 여성은 30대 중반 이후 근속연수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50대 이상에서 경영지원 관리자 등 분석적인 직무성향은 급락하고 반복적이거나 신체를 활용하는 직무성향이 높아졌습니다. 역량이 충분한 중장년층이 생애 주 직장에서 단절된 뒤엔 고용이 불안한 직무로 내몰리고 있는 셈입니다.

 

정장 재킷을 입은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길을 걷고 있다. 연합뉴스
정장 재킷을 입은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길을 걷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현상의 원인에는 정규직 임금의 경직성이 지목됩니다. 한국은 대기업·공공기업 부문에서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증가할 때 평균 임금상승률이 약 15%에 달해 일본(11%) 등 비교 가능한 국가 중 가장 높았습니다. 이런 높은 연공성에 강한 고용보호가 결합되면서 대기업 등 일부 ‘내부자’만 혜택을 보는 가운데 구직자 전반(외부자)이 불이익을 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이에 정년연장이 이뤄져도 혜택을 보는 이들이 정규직에 집중되는 가운데 청년고용 감소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결국, 직무와 성과에 임금이 연동되는 방향으로 연공성이 완화돼야 한다고 대내외 기관은 한목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일부 대기업·공공기관이 누리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완화해야 대다수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층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이런 구조개혁과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임금체계의 변화에 따른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 확충도 병행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IMF에 따르면 사회 안전망 확충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공공지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낮은 편입니다. KDI 역시 광범위한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한편 구직활동 지원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향후 한국 사회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급감할 전망입니다.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약 3738만명에서 2044년에는 약 2717만명으로 20년 만에 1000만명이 증발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무 역량 유지를 전제로 한 고령층 고용 확대는 어쩌면 ‘기회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IMF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OECD 평균보다 정규직 보호 수준이 강력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경기가 확장할 때 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고용 보호를 개혁하면 중기적으로 생산과 고용이 약 5% 증가한다. 좀 더 유연한 형태의 고용보호가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고령층이 법정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침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경기 확장으로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