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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밭서 골프 치던 소년의 반전…지금은 ‘억만장자 리그’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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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소시지 김밥으로 버틴 유년기
최경주 지원 속 유럽 최연소 우승

매일 아침, 광주 천변의 한적한 둔치 잡초밭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번듯한 잔디 타석도, 볼을 자동으로 올려주는 기계도 없는 곳에서 한 소년이 하루 7~8시간씩 골프채를 휘둘렀다. 정식 레슨을 받을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골프 책과 방송 중계를 닳도록 본 아버지가 아들의 스윙을 봐줬다.

AI로 구현한 김민규의 어린 시절 모습. AI생성 이미지
AI로 구현한 김민규의 어린 시절 모습. AI생성 이미지

 

대회장에선 또 다른 현실이 기다렸다. 다른 주니어 선수들이 편안한 숙소에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때, 부자(父子)는 대회장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웅크린 채 밤을 지새웠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허다했다. 조금이라도 밥다운 밥을 먹이고 싶었던 아버지는 투박한 손으로 소시지 김밥을 말아 건넸다. 소년은 아버지의 김밥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보답은 하나뿐이었다. 더 혹독하게 연습하는 것.

 

아버지가 직접 만든 소시지 김밥을 가장 좋아한 김민규. AI생성 이미지
아버지가 직접 만든 소시지 김밥을 가장 좋아한 김민규. AI생성 이미지

소년은 비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채를 휘둘렀다. 그 집념은 2013년 제10회 초등학교골프연맹회장배 우승으로 이어졌다. 당시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소년은 훗날 한국 남자 골프의 차세대 간판으로 성장했다. 김민규(25)의 이야기다.

 

2016년 최경주 재단의 후원으로 디 오픈 대회장을 찾은 김민규(오른쪽). 최경주 재단
2016년 최경주 재단의 후원으로 디 오픈 대회장을 찾은 김민규(오른쪽). 최경주 재단

 

‘전설’ 최경주의 손잡고…유럽 무대 흔들었다

 

포기하지 않은 소년의 사연은 한국 남자 골프의 전설 최경주에게까지 닿았다. 최경주 재단은 그가 비용 걱정 없이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외 전지훈련과 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김민규에게 최경주는 후원자를 넘어선 존재였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최경주 프로님은 실력과 도전 정신,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나면, 형편이 어려워 꿈을 펼치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최경주가 과거 훈련했다는 해수욕장을 직접 찾아가 샷을 연습하며 꿈을 키운 적도 있다.

 

17세 64일의 나이로 유러피언 챌린지투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김민규. 유러피언투어
17세 64일의 나이로 유러피언 챌린지투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김민규. 유러피언투어

 

최경주 재단의 지원 속에 김민규는 2015년 역대 최연소로 골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이듬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홀로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2018년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 챌린지투어(2부) D+D 레알 체코 챌린지에서 정상에 섰다. 17세 64일, 역대 최연소 우승이었다.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던 소년이 유럽 골프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순간이었다.

 

2022년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코오롱 한국오픈 조직위원회
2022년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코오롱 한국오픈 조직위원회

 

시련을 넘어 ‘LIV 골프’ 메인 무대로

승승장구하던 김민규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유럽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가던 김민규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았다. 대회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고 이동에도 제약이 생기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무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2022년 국내 최고 권위의 내셔널 타이틀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마침내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4년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에서 우승한 김민규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KPGA
2024년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에서 우승한 김민규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KPGA

 

2024년에는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와 한국오픈을 잇달아 석권하며 KPGA 투어 통산 3승을 달성했다. 특히 한 시즌 두 차례 우승을 거두며 KPGA 투어 사상 최초로 전반기 상금 8억원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LIV 골프 무대에서 해외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김민규. LIV 골프
LIV 골프 무대에서 해외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김민규. LIV 골프

 

국내 무대에서 정상급 선수로 자리 잡은 김민규는 다시 세계로 눈을 돌렸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PGA 투어 메이저 디오픈 챔피언십을 한국오픈 우승자 자격으로 밟아 공동 31위에 올랐다. 올해부터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모인 LIV 골프 투어에서 경쟁하고 있다.

 

LIV 골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2022년 출범한 신생 투어다. 대회당 총상금이 3000만 달러(약 450억원)에 이를 정도로 파격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이 대거 합류해 있다. 광주 천변 잡초밭에서 홀로 스윙을 가다듬던 소년은 이제 세계 최고 선수들과 같은 무대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SBS 다큐멘터리 ‘내 마음의 크레파스’로 어린 시절 김민규의 이야기를 소개했던 서재민 영상기자는 세계 무대에 선 그를 남다른 감회로 지켜보고 있다.

 

서 기자는 “당시 천변뿐만 아니라 할머니 집 뒷산 잡초밭까지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그 척박한 곳에서도 골프채와 골프공으로 묘기를 보여주던 민규 군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당당히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선수로 성장한 모습을 보니 무척 대견하고 가슴이 뭉클하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