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담배보다 해로운 성분이 90% 적다.” 전자담배는 담배회사들의 이 같은 홍보 속에 ‘덜 해로운 담배’라는 이미지로 빠르게 확산해 왔다. 매캐한 냄새가 강하지 않고, 연기가 적어 담배의 대체재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전자담배 역시 폐 기능 저하와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전자담배가 금연 효과도 불확실한 만큼 모든 형태의 니코틴 의존에서 벗어나는 완전한 금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연 위해 피운다지만… “덜 해롭다”는 착각
‘세계 금연의 날’(5월31일)을 앞두고 대한금연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최근 발표한 흡연자 인식 조사 결과, 금연을 시도했거나 금연 의향이 있는 흡연자의 43%는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최근 1년 안에 금연을 시도했거나 향후 6개월 안에 금연 의향이 있는 25~59세 흡연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이 전자담배를 택한 배경에는 ‘덜 해롭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전환한 이유로는 ‘냄새가 덜 나서’가 66.5%로 가장 많았고, ‘몸에 덜 해로울 것 같아서’가 46.7%, ‘금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가 28%로 뒤를 이었다. 특히 전자담배를 금연 수단으로 인식하는 집단의 59%는 “전자담배는 연기와 냄새가 적어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거의 없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 같은 인식은 전자담배의 외형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전자담배는 냄새가 덜 나고, 눈에 보이는 연기도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냄새와 연기가 줄었다고 해서 몸에 들어가는 유해 물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자담배에서 나오는 하얀 기체가 단순한 수증기가 아니라 니코틴과 중금속, 발암물질, 독성 화학물질이 섞인 에어로졸이라고 설명한다.
◆“안전하다”는 믿음과 달리… 폐도 심장도 위험
전자담배 에어로졸은 입자가 작아 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전자담배 에어로졸에는 연초에는 없던 화학물질이 포함될 수 있고, 가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미세 금속 입자는 폐포까지 침투해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정 유해 성분의 수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신체가 받는 전체 독성 부담이 줄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폐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확인되고 있다. 전자담배 사용자는 기침, 가래, 흉부 불편감, 숨참 등의 증상이 있어도 단순 감기나 피로로 여기고 넘기기 쉽지만,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된다면 기관지와 폐의 염증 반응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담배 관련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전자담배 사용자의 1초간 강제호기량(FEV₁)은 평균 3ℓ로, 비사용자 3.5ℓ보다 약 14% 낮았다. 장기 코호트 분석에서는 전자담배 사용이 기존 흡연 여부와 별개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신규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에어로졸 속 유해 입자는 폐에만 머물지 않는다. 니코틴은 혈압과 심박수를 높이고, 미세 입자는 혈관 내피세포 기능을 떨어뜨려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 전자담배 사용자는 비사용자보다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1.53배 높았고, 과거 흡연력이 있는 전자담배 사용자의 경우 심근경색 위험은 2.52배, 뇌졸중 위험은 1.73배까지 높아진 것으로 보고됐다.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적다는 믿음도 사실과 달랐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이 국외 연구 13편을 종합한 결과, 궐련형 전자담배를 밀폐된 실내에서 사용할 경우 니코틴 농도는 건강 허용 상한치의 최대 86배까지 상승했다. 간접 노출자의 천식 발작과 흉통 발생률은 오히려 궐련 간접흡연보다 높게 나타났고,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와 함께 사는 비흡연자의 니코틴 대사물질 수치도 궐련 흡연자와 동거하는 경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센터장은 “냄새가 없거나 달콤한 향이 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라며 “담배의 냄새가 바뀌었을 뿐, 위험성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금연 효과도 불확실… 니코틴 의존은 남아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이 된다는 기대도 충분한 근거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금연 목적으로 전자담배를 사용해 연초를 끊은 사람의 약 70%는 전자담배를 1년 이상 계속 사용했다. 전자담배와 연초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사용자가 2년 뒤 전자담배만 사용하게 될 확률은 5%에 불과한 반면, 다시 연초 사용자로 돌아갈 확률은 67~80%에 달했다.
전자담배로 일반 담배를 줄였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제로는 니코틴 의존을 유지한 채 흡연 형태만 바꾸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연초와 전자담배를 함께 쓰는 이중사용은 체내 독성물질 노출을 줄이기보다 건강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연초·전자담배 이중사용자의 COPD 위험은 비사용자보다 약 3.9배 높았고, 두 제품을 병행할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명예교수는 “장기간 진행된 다양한 관찰 연구에서 전자담배 사용자는 연초와의 이중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금연 효과 역시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흡연자가 진정한 금연을 원한다면 효과가 입증된 니코틴대체제 등 금연 치료제와 행동요법을 활용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말했다. 조유선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전자담배는 연초보다 덜 해로운 대안이 아니라 형태만 달라진 또 하나의 담배”라며 “어떤 담배가 덜 해로운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니코틴으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한 금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