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속도 110.1㎝/sec’, ‘접지 시간 비율 왼발 61.2%·오른발 63.1%’
지난 18일 대구 북구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신경과 외래 진료 대기실 앞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 선 병원 관계자가 5m를 왕복해 걷자 화면에 보행 속도, 보폭, 좌우 균형 등 7개 지표가 제시됐다.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디지털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이 기기는 경북대병원과 스타트업 에이아이씨유(AICU)가 공동 개발한 ‘게이트 스캐너’다. 수가(의료 서비스 가격) 책정 조율 중으로 내년쯤 진료에 정식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기존에 의사들은 퇴행성 뇌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스톱워치를 손에 들고 ‘걸어보라’고 하곤 했다. 퇴행성 뇌 질환이 악화할수록 발이 지면에 떠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속도, 보폭 등의 비율도 달라진다. 의사의 주관적 평가에 기대는 데 더해 진단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은 번거롭게 여겨졌다. 이 기기의 하위 버전인 게이트 라이트는 5m의 장판과 이를 운영하는 2명의 오퍼레이터, 전용 노트북이 함께 필요하다. 10년 전부터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쓰였는데 가격도 1억원 언저리로 게이트 스캐너의 3배가량이다.
강경훈 칠곡경북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키오스크 형태인 게이트 스캐너로 더 많은 환자를 검사할 수 있고, 진료 결과를 직관적으로 제시해 환자 설명 시 진료 효율성을 대폭 높여줄 것”이라며 “현재 쓰는 게이트 라이트는 하루에 환자 15명이 최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행’은 호흡, 맥박 등과 함께 ‘바이털사인’(활력 징후) 중 하나여서 모든 환자에게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북대병원은 올해 보건복지부의 ‘권역책임의료기관 인공지능(AI) 진료시스템 지원사업’에 지정된 권역책임의료기관 17곳 중 한 곳이다. 복지부는 이들 병원에 국비 총 120억원을 지원하며, 경북대병원은 11억6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사업을 포괄하는 정부의 ‘AI 기본의료 전략’이 6월 중 발표된다.
정부가 ‘의료 AI’ 투자에 속도를 내자 일각에서는 1차(의원·보건소)·2차(병원·종합병원·지방의료원)와 3차(상급종합병원·국립대학병원) 의료기관 간 격차가 두드러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지역·필수·공공의료(지필공) 강화라는 본래 목표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방의료원은 AI에 앞서 전자의무기록(EMR) 등 인프라 구축부터 시급한 상황이다. 열악한 여건 탓에 의료기기 및 전자기기를 교체하고 보강하는 것도 벅차다.
같은 날 오전 강원 영월군의 영월의료원 외과 진료실에서 유일한 외과 응급의사로 근무 중인 조승연 외과 과장이 진료를 마치며 모니터를 매만졌다.
모니터 두 대를 ‘듀얼모니터’처럼 활용해 진료 차트 등 여러 자료를 살피는데, 한 모니터가 먹통이 돼 불편을 겪은 것이다. 화면이 고르지 못한 걸 보고는 전산팀 직원을 불러 모니터를 교체했다.
지역 의료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조 과장에게 AI 의료는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지방의료원의 경우 AI 이전에 EMR조차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MR은 의료진이 환자 진료를 하는 데 효율적으로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다. EMR 시스템의 질이 의료진 업무 부담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과장에게 EMR은 그의 업무를 크게 개선하는 수단이 아닌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낙후된 시스템이다. 환자의 엑스레이(X-ray) 등 사진 조절도 안 된다. 실제 조 과장이 EMR에 한 환자의 흉부 X-ray 사진을 올리자 화면 가득 사진이 들어찼고, 비교를 위한 다른 사진을 첨부하기 위해서는 아래에 배치해 마우스로 위아래를 오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EMR에 그림이나 사진을 첨부하는 것이 불편하고 환자 상태 등 입력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지방의료원의 전산 서버 용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EMR이 먹통이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영월의료원 전산팀은 3명뿐이다. 1년 운영 예산은 4억원가량이다. 조 과장은 “운영 여력이 떨어져 전산팀도 기본적인 하드웨어를 보장해주는 것도 버겁다”며 “의료 질도 전산 시스템의 질과 비례하는데,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 부문이 낙후된 건 정평이 났다. 정부가 공공병원을 키우려는 노력이 없었으니 전산 시스템도 당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격차는 AI 전환(AX) 과정에서 필연적이며 과도기에서 심화할 수 있는 문제다. 정성문 경북대병원 의료인공지능연구센터 교수는 “AX 초기 병원 간 격차나 지역 차이는 커지겠지만 시간이 지나 상황 평준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개인 의원급 병원은 인프라 구축이 어려워 큰 병원과 협업해 공공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3차 대학병원의 인프라를 2차 지방의료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AX가 의료진 부족,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오히려 완화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그는 “진료 영역에서는 임상적 효과성을 높이고, 행정면에서는 예약·접수·기록·전원·상담 절차를 간소화해 환자와 의료진의 시간을 줄인다”며 “결국 환자는 더 정밀한 진료, 더 짧은 대기, 더 표준화된 의료서비스를 다각도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공공의료의 낙후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공 병원정보시스템 AI 클라우드서비스 개발 검증 지원 사업’ 공모를 5월22일까지 받았다. 공공 부문 대규모 정보시스템의 클라우드 전환을 지원해 AI 클라우드서비스로 개발 및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발 검증을 주도할 수행기관으로 선정된 업체는 2년간 270억원 규모를 지원받아 시스템 개발 및 검증에 나선다. 다만 이제 공모 절차를 마무리하는 만큼 전국 지방의료원에 시스템이 확산하는 데 5∼7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은 “기존 전통적 의료전달체계(1?2?3차 의료기관)에서 지방의료원 등 소외된 곳들이 AI 활용에서도 격차가 생기면 이중소외가 발생한다”며 “정부가 EMR, 인력 등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