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30곳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3곳은 의사 수 정원도 채우지 못했다.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분야 인공지능(AI) 전환에 속도가 붙은 상황이지만 1차(의원·보건소)·2차(병원·종합병원·지방의료원)와 3차(상급종합병원·국립대학병원) 의료기관 간 AI 기술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1일 보건복지부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35곳 지방의료원의 총 적자는 1669억5097만원으로 집계됐다. 35곳 지방의료원 중 지난해 적자를 보인 의료원은 30곳(85.7%)에 달했다. 흑자를 낸 곳은 5곳(경기의료원 이천병원·성남의료원·원주의료원·진안군의료원·울진군의료원)에 그쳤다. 나머지 의료원 30곳의 총 적자는 1828억9859만원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가장 큰 손실을 낸 곳은 서울의료원(-157억8738만원)이다. 이어 청주의료원(-128억3442만원), 마산의료원(-114억9064만원), 대구의료원(-114억6829만원) 순으로 적자 규모가 컸다. 정부는 올해 120억원을 국립대병원 중심인 권역책임의료기관의 AI 진료시스템 지원에 투입한다. AI를 지역·필수·공공의료(지필공) 강화의 수단으로 쓰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지필공을 떠받치는 한 축인 지방의료원은 AI는커녕 만성화된 적자·인력난·낙후시설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이 크다.
현재 각 지방의료원은 진료시스템의 필수 기반인 전자의무기록(EMR) 구독료 차원에서 매달 300만∼500만원을 전산관리회비로 지방의료원연합회에 낸다. 만성 적자난에 빠진 지방의료원 입장에서는 매달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지방의료원, 적자·인력난·낙후시설 정상화 시급
지방의료원연합회도 시스템을 유지·개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지방의료원연합회는 관련 부서 직원 28명이 32개 지방의료원의 EMR을 관리하는 실정이다.
안창호 지방의료원연합회 정보화사업부 부장은 “32개 지방의료원을 비롯해 민간병원 한 곳과 일부 요양병원도 연합회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며 “직원 1명당 병원 1곳 이상의 시스템을 관리하는데 전산회비로 받는 것도 직원들 인건비 수준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인공지능(AI) 투자 예산은 없고, 시스템 유지·보수하고 개선하는 정도”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논리에만 맡긴다면 공공과 민간, 1·2차와 3차 의료기관 간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AI 진료시스템 지원사업을 모든 의료기관에 한 번에 도입할 수는 없어 선후 격차는 불가피하다”며 “질 높은 임상 데이터는 대형 3차 병원에 집중됐고, AI 의료기기 개발사로서도 3차 병원과의 계약이 지방의원들보다 사업성이 높다고 볼 것”이라고 짚었다.
복지부는 지방의료원 경우 AI보다 전산화 기반 강화가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측은 “공공의료기관의 전산화 지원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관련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안 부장은 “복지부가 6월 발표할 의료 AX 전환 추진 계획에 지방의료원의 병원정보시스템 클라우드 개발 등을 포함하고, AI 전환 지원에서도 지방의료원의 연계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료는 민간과 비교해 인력 확보도 어려운데 인프라 지원도 미비할 경우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직원 월급과 수당 등을 제때 주지 못해 임금체불 문제가 나타난 지방의료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은 “지방의료원의 상황은 당장 내일이 어떨지 모를 정도로 기능 회복이 안 되고 있다. 언제든 임금체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영난을 겪는 지방의료원들이 급한 불인 임금체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역개발기금을 차입해 쓰는데, 적자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2∼3%대 이자가 더해져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현장 의료진 이탈로 인력난 문제를 겪는 곳도 절반을 넘는다. 지방의료원 13곳은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남의료원의 경우 지난해 의사 수가 60명으로, 정원(99명) 대비 60% 수준에 불과했다. 대구의료원도 정원(67명)보다 22명이 부족한 45명, 서울의료원은 정원이 279명이나 현원은 226명이었다.
조승연 영월의료원 외과 과장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지방의료원들이 흑자를 보였으나, 감염병 이후 적자와 의료진 이탈이 가속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 곳곳에 있는 지방의료원이 허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원들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면 지역 소멸 문제도 많이 완화될 것”이라며 “영월 지역 환자 70% 이상이 택시비를 몇만 원씩 쓰면서 원주나 제천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열악한 재정·인력 여건을 비롯해 낙후된 전산 시스템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