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돌기둥과 양귀비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몇해 전 영국 런던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빅벤 근처에서 뜻밖에도 ‘THE KOREAN WAR’(한국전쟁)라고 새겨진 비석을 발견했다. 그 앞의 동상은 굳은 표정으로 소총을 멘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6·25전쟁 당시 파병된 영국 군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따금 그곳을 지나는 시민과 관광객은 동상을 살펴본 뒤 숙연해진 표정으로 묵념을 하곤 했다.

해외에서 6·25전쟁의 추모 공간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 뉴욕에는 자유의여신상으로 향하는 항구의 배터리 파크에 6·25전쟁 참전비가 세워져 있고,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는 6·25전쟁을 기리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호주에는 수도 캔버라를 비롯해 시드니와 멜버른에 6·25전쟁 참전비가 각각 위치해 있다. 먼 이국땅에서 6·25전쟁을 추모하는 것은 그들이 파병했던 군인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권구성 경제부 기자
권구성 경제부 기자

국내에서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6·25전쟁 참전국에서 기증받은 돌로 세운 6.25m 높이의 석재 조형물은 군인의 제식동작인 ‘받들어총’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민을 위한 광장의 분위기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추모 공간 건립에 대한 숙의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전쟁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서울 한복판에서 차가운 돌기둥으로 전쟁의 아픔을 되돌아본다는 것이 새삼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간 우리 사회가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나 그 유가족의 아픔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외면해 온 탓이 크다. 분단국가라는 비극을 발판으로 세계적인 무기 수출 국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총구를 겨누는 현실에는 지나치게 무뎌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추모 공간을 조성한다고 해서 사회가 달라지진 않는다. 6·25전쟁 참전비를 세운 국가 중에는 여전히 전쟁을 벌이는 곳도 있다. 단지 그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이나마 의미를 찾아갈 뿐이다.

미 해병대 소속 챈스 펠프스 일병은 2004년 이라크전쟁 파병 중 19살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동향인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이 직접 인도를 맡았다. 유해를 옮기는 수천 ㎞의 여정에서 마주친 수많은 시민은 그와 챈스 일병의 유해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운구를 지켜본 시민은 조의를 표했고, 항공사는 마이클 중령에게 일등석 좌석을 내줬으며, 운구차가 이동하는 도로에선 뒤따르는 차량이 추월하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어느 일병의 죽음이지만, 그들의 그런 태도가 챈스 일병의 희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유럽에서는 붉은색 양귀비꽃으로 전쟁을 기억한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서 피어난 붉은색 양귀비의 감동과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런던에 세워진 6·25전쟁 참전비에도 누군가 남긴 붉은색 양귀비 화환이 놓여 있었다. 참전비는 6·25전쟁을 이렇게 회고했다.

“한국전쟁은 침략에 맞선 유엔 최초의 행동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락하고 빈곤했지만, 영국은 군대를 즉시 지원했다. 먼 곳에서 마주한 의무는 명예롭게 완수했다. 8만1084명이 전장에서 복무했고, 1106명이 전사했으며, 1060명이 전쟁 포로로 고초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