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에게 아침 산책은 하루를 여는 가장 소중한 의식이다.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다면 어김없이 집을 나섰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오셨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청명함이 가득한 5월을 유난히 사랑하셨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머니의 입에서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씀이 부쩍 잦아졌다. “밤꽃이 필 무렵, 모내기 철엔 이렇게까지 해가 뜨겁지 않았는데….” 놀이터를 뛰어놀던 아이들조차 5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기 일쑤다. 분명 우리가 기억하던 5월의 태양과는 사뭇 달랐다.
이상 고온의 배경으로 주목받는 것이 엘니뇨다.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이 현상은 지구의 기후 균형을 뒤흔든다. 특히 해수면 온도가 2도 이상 높아질 경우 ‘슈퍼 엘니뇨’로 분류되는데, 최근 기상학계는 그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향후 5년 안에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던 2023년의 기온 기록이 다시 경신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부 해외 기상 전문 매체들은 올해 말 강력한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1877년 발생한 슈퍼 엘니뇨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후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인도와 중국,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극심한 가뭄과 흉작을 불러왔고, 이로 인한 대기근으로 50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고종실록에는 먹을 것을 찾아 한양으로 몰려든 유민들로 구호를 담당하던 진휼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후 변화가 곧 인간의 삶과 생존을 뒤흔드는 재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급격한 기후 변화 추세는 이미 여러 관측 자료를 통해 확인된 과학적 사실이다. 문제는 인간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해왔다는 데 있다. 지난달 30일 밤 강릉에선 지난해보다 19일 빠른 올해 첫 열대야가 관측됐다. 벌써 다가올 여름밤이 두려운 이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더위만이 아니다. 익숙했던 계절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막막함일지도 모른다. 기상이변은 더는 미래나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