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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도 의사도 AI 조언에 기대… “오진 가능성, 맹신 안 돼” [심층기획-두 얼굴의 AI 의료·돌봄]

<중> 혼돈의 진료실

챗 GPT에 증상·병명 등 물어봐
환자들 내원 전에 자가진단 빈번
증상 원인 찾아 의사 떠보기도
“좋은 질문 위한 준비 도구로 써야”

의료기관 AI 사용도 현장과 괴리
문진표·치팅 에이전트 활용 불구
진료·업무 개선으로 연결 안 돼
“환자 만족이 최우선 가치 되어야”

김모(33)씨는 일주일 전 자다가 옷을 걸어둔 행거가 쓰러져 가슴팍을 덮치는 작은 사고를 겪었다. 통증이 심해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별일 아니고, 큰 충격 탓에 잠시 아픈 것”이라며 김씨를 돌려보냈다. 병원을 나선 그는 통증이 계속돼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곧바로 챗GPT에 증상을 얘기하고 가능한 병명을 말해 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갈비뼈가 부려졌을 수 있으니 다른 병원에 가 엑스레이(X-ray)를 찍어보라”는 것이었다. 이튿날 다른 외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고, 갈비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처음 찾아간 병원 의사가 원망스러운 동시에 챗GPT를 더 많이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씨처럼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의료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일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AI 조언이 오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셀프 진단’이 빈번해 혼란스럽다는 의료 현장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의료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한 가상의 이미지. Chat GPT 생성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의료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한 가상의 이미지. Chat GPT 생성

◆“진료 1분, GPT 상담 1시간”

임신 8개월 차인 이모(30)씨도 요새 하루에 한 번 이상 챗GPT에 의료 정보를 묻는다.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어 산부인과에는 한 달에 한 번만 가 매일 생기는 궁금증을 해결할 방도가 달리 없어서다. 일례로 디카페인 커피는 먹어도 되는지, 콜라에도 카페인이 들었다는데 괜찮은지 등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씨는 “진료를 봐도 30분씩은 못 하지 않냐”며 “GPT에게는 미안한 마음 없이 30분이고 1시간이고 물어볼 수 있어서, GPT가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AI가 잘못된 의료 조언을 하는 경우다.

최근 국제 학술지 랜싯에 실린 미국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대 연구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가 거짓 의료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인 비율은 31.7%로 나타났다. 공신력 있어 보이는 거짓 정보는 더 잘 속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허위 건강 속설은 8.9%만 사실로 믿었지만, 병원 기록 형태 정보를 믿는 비율은 46.1%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명암이 있다고 진단한다.

정성문 경북대병원 의료인공지능연구센터장은 의사에게 더 구체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점은 좋은 영향이라고 짚었다. 환자가 미리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와 진료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도 “AI의 답변은 실제 진단이 아니어서 AI 답을 맹신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AI 자가진단이 진료실 대체가 아닌, 더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한 준비 도구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셀프 진단’에 골머리 앓는 병원

의료진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3차 병원인 서울대병원 예약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박모씨는 1·2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희귀질환자’라며 예약해 달라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동네 의원도 간 적 없는 환자가 본인이 극희귀질환자라며 예약을 잡아 달라고 한다”며 “사정을 물어보면 AI에 증상을 말했더니 극희귀질환자라더라는 것”이라고 했다.

말초신경질환이 의심돼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보려면 1·2차 병원에서 먼저 관련 소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박씨는 “얼마 전 ‘손이 저려서 AI한테 물어봤더니 말초신경질환이라더라’며 예약을 요청한 환자가 있어 1·2차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돌려보냈다”고 전했다.

AI 기반 건강관리 플랫폼 헬미닥을 창업한 박형준 화홍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도 이 같은 현상에 공감했다. 그는 “결핵약을 처방했는데 이후 ‘통풍이 결핵약 때문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환자가 있었다”며 “환자가 본인 증상의 원인을 알아온 뒤 떠보는 듯한 경우가 자주 있다”고 했다.

 

◆“의료AI, 현장 요구와 괴리”

환자뿐 아니라 의료기관과 의료진도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AI 에이전트를 직접 설계해 업무에 활용하는 의료진도 적지 않다. 박 교수는 “AI를 활용해 사전 문진표를 만들거나, 치팅(진료기록부 업무)해 주는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쓰는 선생님들이 꽤 있다”고 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랜싯이 3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 의료진의 28%가 투약 검토 등 업무에서 AI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보고서는 “이런 흐름은 되돌릴 수 없으며,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는 지난해 ‘2035년까지 세계에서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조직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전했다.

업무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4월 ‘한국의 간호와 AI’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의료기관들이 AI 도입에는 적극적이나 실제 간호사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향과는 간극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반복 업무를 줄이는 실질적인 기술을 더 필요로 하는데, 병원들은 브랜딩에 도움이 되는 보여주기식 기술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실제 의료진이 필요한 AI 도구와 병원에서 사들이는 게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며 “현재 나와 있는 AI 의료기기가 환자가 체감할 만큼의 진료나 업무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는 것 같아 ‘환자 만족’이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