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 수출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데는 반도체가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반도체 수출 비중은 40%를 넘어서며 존재감을 더 키웠다. 반도체 슈퍼호황 덕에 16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가며 올해 들어 5월까지 벌써 흑자 규모가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국 무역수지는 전년 대비 200억3000만달러 증가한 269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2025년 2월 흑자로 돌아선 이후 16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1∼5월 누적 기준 무역수지는 1019억1000만달러 흑자로 5개월 만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전까지 연간 기준 최대치는 2017년의 952억달러였다.
반도체 수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3%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연간 비중이 24.4%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수출의 절반 가까이가 사실상 반도체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이번 수출 급증은 물량 확대보다 가격 상승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경쟁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메모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실제 D램 수출은 369.8%, 낸드플래시는 206.8% 증가했다. 메모리 고정가격도 1년 새 수배 이상 뛰었다.
AI 서버용 SSD 수요 확대에 힘입어 컴퓨터 수출은 290.7% 증가한 41억8000만달러를 기록했고, 화장품 수출도 K뷰티 인기에 힘입어 역대 5월 기준 최대 실적인 11억8000만달러를 달성했다. 바이오헬스, 이차전지, 농수산식품 등도 증가세를 보였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중동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 등으로 수입이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중심으로 IT 품목과 화장품, 농수산식품 등 유망소비재 품목 등에서 양호한 수출 실적을 보이고 있다”며 “수입을 더 크게 뛰어넘는 수출 실적 덕분에 역대급 무역수지 흑자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수출 쏠림과 산업 구조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 수출은 5.9% 감소했고 철강 수출도 2.1% 줄었다.
강감찬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이번 반도체 수출 견인은 물량 증가보다 가격 상승 효과가 컸던 만큼 가격 변동에 따른 수출 불확실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하반기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내년 초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현재와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연간 수출이 1조달러에 근접하거나 넘어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역별로는 9대 주요 수출 지역 중 7곳에서 수출이 늘었다. 중국으로의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80.9% 증가한 189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으로 수출도 반도체와 컴퓨터, 전기기기 등이 늘어나면서 59.1% 증가한 159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 밖에 아세안에서 58.4% 증가한 158억5000만달러, 유럽연합(EU)에서 2.4% 증가한 61억9000만달러 등 호조세를 나타냈다. 반면 중동에서 수출은 전쟁에 따른 물류 차질로 7.7% 감소한 12억7000만달러로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