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귀가하던 17세 여고생 고(故) 이채원 양을 흉기로 살해한 장윤기(23)의 진짜 범행 목적이 ‘성폭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같이 일하던 외국인 동료를 10시간 넘게 감금하고 30시간 가까이 스토킹하다 실패하자, 일면식도 없는 10대 소녀를 새로운 범행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최근 스토킹 범죄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이른바 ‘경계선 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스토킹 피해자 보호망의 사각지대와 우발적 범죄로 위장한 계획범죄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경찰의 ‘우발적 분풀이’ 뒤집은 검찰…진짜 목적은 성폭행
광주지검 형사3부(김진희 부장검사)는 2일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 피의자 장윤기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장윤기를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구속 기간을 연장하고 보완 수사를 벌인 결과, 그가 피해 여고생을 납치해 성폭행할 계획을 처음부터 품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장윤기는 피해자를 등 뒤에서 제압한 뒤 차량 쪽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강하게 저항하자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장윤기가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20대 베트남 국적 여성 A씨를 대상으로 저지른 성폭행과 수법이 동일하다는 점을 핵심 근거로 들었다.
경찰 송치 당시 적용됐던 일반 살인죄의 법정형 하한선은 징역 5년이다. 하지만 검찰이 새로 적용한 강간 등 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이러한 혐의 변경은 법조계 안팎에서 범행의 잔혹성과 계획성을 법원이 엄중하게 다룰 수 있는 핵심 법리적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단순 살인이 아닌 성범죄 목적의 계획범행으로 혐의가 대폭 상향된 것이다.
◆ 외국인 동료 10시간 감금…30시간 스토킹 배회까지
검찰은 장윤기가 이 양을 살해하기 전 A씨에게 저지른 강간 등 상해, 살인예비, 감금,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도 이번 공소장에 포함했다.
장윤기는 A씨에게 교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A씨의 집에 침입해 10시간 이상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주거지 인근을 배회하는 장윤기를 발견하고 112에 스토킹 의심 신고를 한 뒤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장윤기는 경찰의 ‘스토킹 경고 문자’를 받고도 30시간 가까이 광주 첨단지구 일대를 배회하며 A씨를 찾아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목은 경찰의 1차적인 서면 및 문자 경고 조치가 강력 범죄자의 범행 의지를 꺾기엔 역부족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 범행 대상 변경…비명 듣고 달려온 남학생에게도 흉기 휘둘러
A씨를 찾지 못해 분노가 극에 달한 장윤기는 범행 대상을 이 양으로 바꿔 미행했다.
장윤기는 지난달 5일 오전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인적이 드물고 방범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인 샛길 초입에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장윤기는 이 양의 비명을 듣고 도우러 온 고교 2학년 남학생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체포 당시 범행에 사용한 흉기 외에 개봉하지 않은 흉기 1점을 추가로 소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A씨를 살해할 목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판단됐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장윤기는 “사는 게 재미없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고민하다 범행을 결심했다”는 진술을 반복하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해왔다.
◆ “광주 여고생이 아닌 17세 이채원으로 기억해 주세요”
피해 유족은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 피해자’가 아닌 ‘17세 이채원’으로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양의 아버지는 이모씨 “사건보다 이채원이라는 이름이 기억되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딸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채원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도 감지 못한 채 있었다”면서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사춘기도 없을 정도로 정말 착한 아이였다. 단 한 번도 엄마 아빠에게 화낸 적이 없었다”며 딸을 절절히 그리워했다.
이 양의 방은 사건 발생 전 모습 그대로 멈춰 있다. 매일 입고 다니던 교복이 단정하게 걸려 있고, 책상 위엔 교재와 학용품이 그대로 놓여 있다. 태블릿에선 생전 이 양이 즐겨 듣던 노래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이 양의 어머니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저희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잊히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며 장윤기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될 수 있도록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