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에서는 ‘내가 사는 지역의 일꾼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지가 좀처럼 부각되지 못했다. 지역 현안과 후보 경쟁은 뒤로 밀렸고, ‘내란 심판론’과 ‘정권 심판론’ 등 중앙정치 구호와 진영 논리가 선거판을 압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현직 대통령의 행보까지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선거는 여야 대리전 양상으로 흘렀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 갈등도 한층 증폭됐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챙기는 기초 의원·단체장 선출의 장이 중앙정치권의 ‘대리전’으로 소비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대표 대신 전·현직 대통령 부각
이번 선거에서 당의 ‘얼굴’ 격인 당대표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거대 양당의 두 대표 모두 중도층 민심이 좌우하는 격전지 공략에 한계를 드러내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영남권 등 험지 방문을 자제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역시 수도권 등 주요 격전지에서 후보들과의 동행 유세를 최소화했다. 유세 동선이 제한되면서 선거 막판에는 두 대표가 각각 연고가 있는 충남을 중심으로 활동 무대가 겹치는 모습마저 나타났다.
양당 대표가 각 당의 가치와 비전을 전면에 내세워 승부를 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전·현직 대통령들이 선거전에 적극 등판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선거 기간 중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부산·경남 등 영남권은 물론 서울과 충청 등 격전지를 돌며 국민의힘 후보 지원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도 사전투표를 앞두고 1박2일 일정으로 경남과 부산의 민생 현장을 찾는 등 측면 지원에 힘을 보탰다.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전·현직 대통령들이 선거 전면에 등장하면서 지방선거의 중앙정치 종속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 탄핵됐던 박 전 대통령이 대전·대구·부산·충청·강원 등을 돌고, 형사처벌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서울·부산을 오가며 국민의힘 지원 유세를 한 데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유권자들에게 지방선거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고 ‘중간선거’의 성격도 있어서 반드시 전직 대통령의 등장을 잘못이라고 볼 순 없다”면서도 “그 사안이 지방 이슈를 압도하는 수준일 때 문제가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두 전직 대통령들이 탄핵당하고 법의 심판을 받았던 것은 유권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이슈”라고 지적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은 “이·박 전 대통령의 등장은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호감이 크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이 나서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스타벅스 비판 발언을 두고선 “지지층 결집용 메시지로 보수층이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했다. 채 연구원은 “전·현직 대통령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지역 일꾼론’을 강조해야 할 지방선거에서 중앙정치 이슈가 더 큰 관심을 받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당파적·정파적 양극화가 심화됐고, 결과적으로 선거가 정책과 공약을 서로 비교하고 토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진단했다.
◆지방의 중앙 종속 심화
지방선거 결과가 양대 정당 리더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도 지방 의제를 밀어낸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의 경우 8월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선출한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의 잔여 임기가 1년 더 남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양당 대표가 지방선거 성적에 따라 책임론을 떠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3대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될 당대표직을 둘러싼 당권 경쟁이 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지역 공약과 생활 의제가 중앙정치 이슈에 가려졌다는 지적이다.
채 연구원은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하위 무대이자 대리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면서 “결과적으로 진영 정치를 더 강화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선동의 장으로 만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수찬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민주당의 공천 잡음 등이 이번 선거를 잠식하는 데 한몫했다”며 “특히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전당대회와 맞물려 선거가 진행되다 보니 차기 당권 경쟁 구도가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고 했다. 윤 교수는 “지방정치의 중앙 종속을 막으려면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으로 3종(대선·총선·지방선거) 선거를 2종으로 줄여야 한다. 대선과 지방선거 주기를 맞추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