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3일 잠실4동 제5 투표소에서 한 남성이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날 오후 4시45분 투표소에 도착했지만 투표용지가 떨어졌다는 선거관리원의 설명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대기하다가 선거 마감 30분가량을 남기고서야 투표할 수 있었다. 그는 “만약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밖에 나갔으면 투표를 못했을 것”이라며 “선관위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 있던 또 다른 남성은 “1시간40분을 기다리다 아내는 몸이 안 좋아 먼저 들어갔다”며 “투표권을 도둑당한 느낌”이라고 억울해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에 서울 일부 지역 유권자들이 예상보다 많이 몰리면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오후 서울 송파·강남·광진·동작구 등 서울 시내 10여곳 이상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대기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결국 투표용지를 못 받아 정해진 투표시간을 지키지 못한 유권자들을 위해 일부 지역 투표소는 투표 시간을 연장했다. 일부 투표소에선 투표 마감시각 이후 유권자에게 ‘대기표’를 나눠주는 식으로 대응했다. 뒤늦게 각 지역 선관위가 지퍼백에 담은 투표용지를 투표소에 보내 투표를 재개하자, 일각에선 ‘지퍼백 사태’라는 말까지 나왔다.
잠실7동 제2 투표소의 경우 투표가 늦어지며 오후 10시까지 선거가 연장됐다. 일부 시민의 항의가 밤까지 이어졌고 야당은 선거 개표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서울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선거 연기를 요구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시간 이상 투표를 못 하게 되면 사실상 개인적 일정 등으로 투표를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대한 투표권 침해, 참정권 침해”라며 “투표용지를 다른 곳에서 급하게 이송해 오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투표지 관리가 되는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원내대표는 “이것은 단순히 선관위에서 사과한다고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전혀 아니다”라며 “더 이상 이 선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지적이다. 서울 선거는 이대로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에 분명히 요구한다. 서울 선거개표를 지금 즉시 중단하길 바란다. 공직선거법 제196조에 따라 선거를 연기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직선거법 196조에는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의 경우 관할 선거구 선관위원장이 지자체장과 협의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9시 경기 과천청사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선관위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즉시 투표용지가 부족한 투표소로 투표용지를 이송했으며 해당 투표소에서 대기 중인 유권자는 마감 시각이 지나더라도 정상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022년 대선 사전투표 당시 ‘소쿠리 투표’에 이은 치명적인 선거관리 부실을 노출하며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서울 외에도 전국 투표소 곳곳에서는 투표자들이 부정선거를 의심하며 소란을 피우거나 선거관리원을 폭행하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대체로 ‘투표용지를 다 받지 못했다’는 항의였지만, 확인 결과 오인이나 착각인 경우도 있었다. 선거관리원을 폭행하거나, 투표소 현수막이나 투표용지를 훼손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경찰은 이날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업무체계인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가용 경력 6만5369명을 전국 1만4288개 투표소에 투입해 대응했다.
투표가 종료된 후에는 투표소별로 경찰 2명씩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과 투표함 회송을 지원했고 전국 258개 개표소별로도 경찰이 30명씩 배치돼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