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의 축소판이자 최대 승부처인 경기도의 6·3 지방선거 성적표는 절묘한 균형과 견제였다. 중앙 권력의 지형 변화와 탄핵 정국의 여진을 딛고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1400만 도민들은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인 쏠림을 허용치 않았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종 개표 결과에 따르면, 경기도 31개 시·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9곳, 국민의힘이 12곳을 각각 차지했다.
국민의힘이 22곳, 민주당이 9곳을 석권했던 4년 전 민선 8기 선거와 비교하면 공수가 역전된 모양새다. 민주당은 4년 만에 경기 지역 지방 권력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며 ‘판정승’을 거뒀지만, 선거 막판 정가 안팎에서 흘러나왔던 ‘20곳 이상 석권’이라는 ‘싹쓸이론’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최악의 정당 지지율과 불리한 정치 환경 속에서도 수도권 붕괴를 막아내며 차기 선거를 위한 재기의 발판과 견고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민주당의 판정승: 서남부 대도시·중부권 완벽 수성과 격전지 탈환
민주당은 경기도의 인구 밀집 지역인 대도시와 중부권을 중심으로 표심을 확장하며 전체 승리를 견인했다. 도내 민심을 대변하는 수부도시 수원을 비롯해 고양·화성 등 특례시 4곳 중 3곳을 거머쥐며 체면을 세웠다.
수원에서 이재준 시장이 국민의힘 안교재 후보를 꺾고 재선 고지에 오르는 등 현역 시장 후보 7명 전원이 당선됐다.
화성의 정명근 시장 역시 수성에 성공했다. 일찌감치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던 임병택 시흥시장을 필두로 조용익 부천시장, 박승원 광명시장(3선), 최대호 안양시장(4선), 김보라 안성시장(3선) 등 현역 프리미엄을 앞세운 서남부 벨트 주자들이 줄줄이 연임에 성공하며 민주당의 든든한 방어선을 이뤘다.
특히 민주당은 국민의힘 소속 현역 단체장들이 버티고 있던 격전지를 잇달아 탈환하는 성과를 올렸다. 고양에서는 민경선 후보가 현역 이동환 시장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고 남양주 최현덕, 광주 박관열 후보도 현역 시장을 누르고 깃발을 꽂았다. 김포에서는 도의원 출신 이기형 후보가 현역 김병수 시장을 제쳤고 양주 정덕영, 오산 조용호, 의정부 김원기, 이천 성수석 후보 역시 국민의힘 현역 단체장과의 힘겨운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군포에서는 민선 7기 시장이던 한대희 후보가 현역 시장을 따돌리며 4년 만에 시장직을 되찾아왔다.
현직 시장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었던 파주와 평택에서도 손배찬 후보와 최원용 후보가 각각 당선되며 민주당의 자존심을 지켰다.
◆국민의힘의 뚝심: ‘연임 잔혹사’ 끊어낸 남부 거점 사수와 북동부 수성
지방 권력의 과반을 내어준 국민의힘이지만, 선거 내용을 뜯어보면 결코 완패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묵직한 성과를 거뒀다. 민주당의 파상 공세 속에서도 보수의 전통적 영토인 경기 북·동부 벨트를 사수한 것은 물론, 수도권의 심장부로 통하는 남부 핵심 격전지들을 극적으로 지켜내며 중앙 정치권에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대표적인 성과는 인구 110만명의 특례시이자 경기 남부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심축인 용인이다. 용인은 역대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현직 시장의 연임을 허락하지 않아 ‘시장들의 무덤’이라 불리던 곳이다. 1998년 한나라당 윤병희 후보가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있으나, 당시 군수·시장으로 엇갈려 당선됐고 재선 직후 뇌물 혐의로 법정에 서면서 사임했다.
이번 선거에선 국민의힘 이상일 후보가 민주당 현근택 후보의 거센 추격을 3.02%포인트 차로 따돌리며 용인 역사상 ‘최초의 연임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민선 8기 동안 다져온 반도체 국가산단 유치 실적과 행정 연속성론이 젊은 이주민과 중도층의 실리적 표심을 자극한 결과다.
최대 승부처였던 성남과 안산의 수성도 극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에서는 신상진 후보가 분당 재건축 공공기여금 논란을 정면 돌파하며 민주당 김병욱 후보를 단 1.62%포인트(8019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안산에서도 현직 이민근 후보가 뇌물수수 의혹 공세를 뚫고 민주당 천영미 후보를 0.87%포인트(2597표) 차로 제치며 안산 역사상 최초의 재선 시장(연속 당선)이 됐다. 도내 최고령인 하남 이현재 후보와 지난해 말 심정지로 쓰러진 뒤 기사회생한 의왕의 김성제 후보도 수성에 성공하며 국민의힘의 수도권 경쟁력을 입증했다. 김 후보는 여야를 오가며 징검다리 4선을 기록했다.
북동부권에서는 포천 백영현, 양평 전진선, 여주 이충우, 동두천 박형덕, 가평 서태원, 연천 김덕현 후보가 빨간 깃발을 지켜냈다. 특히 과천의 신계용 후보는 가장 먼저 당선을 확정 지으며 안성 김보라 후보(민주당)와 함께 경기도 최초의 ‘여성 3선 시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교차 투표’가 만든 절묘한 균형…행정 연속성과 실리 택한 도민들
이번 6·3 지방선거 경기 지역 개표 결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도지사 선거와 기초단체장 선거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다. 유권자들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인물을 우위에 두며 날카로운 교차 투표 경향을 보였다.
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추미애 후보가 과천·가평·여주 3곳을 제외한 28개 시·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며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단체장 선거에서는 성남, 용인, 안산, 하남, 의왕, 포천, 동두천, 연천, 양평 등 9개 지역 유권자들이 도지사는 민주당을 찍으면서도 시장·군수는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하는 절묘한 표 분할을 보였다.
이러한 표심의 기저에는 거대 담론의 정치적 심판론과 별개로, 내 지역을 이끌어갈 일꾼을 뽑을 때는 정당보다 인물과 행정의 ‘연속성’을 우선시한 실리주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연임에 도전한 현직 시장·군수 29명 중 무려 19명이 생환하며 65.5%라는 높은 생존율을 기록했다.
안양의 최대호 시장과 의왕의 김성제 시장은 전국 최다선인 징검다리 ‘4선 시장’의 반열에 올랐고 광명 박승원, 안성 김보라, 과천 신계용 시장은 3선 고지를 밟았다.
반면 지역 민심에 부합하지 못했거나 바람에 휩쓸린 10명의 현역 단체장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도민들은 도지사 선거를 통해 새 정부와 교감을 드러냈지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생활 인프라와 재건축, 첨단 산업 등 내 삶의 질을 직접 바꿀 유능한 일꾼들을 살려두는 실용적 선택을 했다”며 “민주당에는 이겼지만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를, 국민의힘에는 패했지만 수도권 재건의 숨통을 열어준 처방을 동시에 내렸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