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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하늘의 별이 된 시인이 보내온 시집

아, 나왔구나. 머릿속에서는 유고시집이 출간돼 나왔다는 생각이 일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시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표지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올 것이라 것도 어렴풋이 알았는데, 막상 물성으로 시집을 받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올 초 작고한 김신용(1945~2026) 시인의 유고시집 ‘등꽃 아래’(산지니). 시집 안으로 성큼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의 발걸음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그와의 기억이 툭, 튀어나오더니 이내 부풀어 오르는 게 아닌가.

 

기자가 김 시인을 처음 만나게 된 때는, 개인적으로 뭔가 새로운 변화나 환기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문학 기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글 쓰는 이로서. 전혀 새로운 문학이나 글, 그것을 품은 작가를 만나고 싶었다. 그냥 새로움만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근본적 새로움이 있되, 문학성은 현저한 수준을 유지할 것. 민중적이라거나 진정성이 있으면서도, 높은 문학적 완결성을 유지할 것….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가을밤을/ 맑고 청량하게 하는 것은/ 작은 이슬과/ 풀벌레 소리이다.// 이 여린 것들이 모여/ 가을밤을 더욱 맑고 투명하게 한다.” 유고시집을 열자, 첫 글인 ‘시인의 말 하나’가 들어왔다. 천천히 읽어내려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글은 마지막 한 문장이 더 있다. “여기 놓인 짧은 시편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2년 전쯤, 김상미 시인을 통해 김신용 시인을 알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고 그의 시들도 읽어봤다. 놀라웠다. 지게꾼 출신의 파란만장한 삶에, 그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경험적 시, 놀라운 생명력, 그럼에도 높은 문학적 수준까지. 10번째 신작시집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발표를 계기로 그와 대면할 기회를 갖게 됐다.

 

마침내 유고시집 안으로 들어가자 노구의 그가 가지런한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등꽃 아래에 서서 작고 여린 존재에 기억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모습도. “저 등꽃, 환하다// 제 그늘 너무 짙어 등 하나 켜 놓은 것 같다.// 빈자(貧者)의 일등(一燈)도 저와 같을까?// 대낮에도 밝게 켜 놓은// 저 등, 아래 서면// 그래, 누군가 발 헛디딜 이 없겠다.”(‘등꽃 아래’ 전문) 페이지를 뒤로 넘길수록 그가 목소리로 살아왔다. 경상도 억양이 아직 남아 있는 다정한 목소리로.

 

2024년 2월 하순, 시집을 읽고 차를 몰아 시인이 살고 있던 충주로 달렸다. 낡은 아파트였는데, 흔쾌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아주던 기억에 남아 있다. 흑백 필름처럼 남은 기억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시인의 철제 책상이었다. 젊은 시절 자취방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상이었는데, 그가 그 책상 앞에 앉기까지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의 삶과 운명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김 시인의 유고시집을 다 읽고 나자, 알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인과 인터뷰하러 충주 가던 날 만났던 차창 밖 하늘은 얼마나 푸르렀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또 얼마나 충만했고. 창밖 공기는 아직 겨울이라 차가웠는데도 이상하게도 너그럽고 훈훈했는데. 한없이 넓은 하늘을 보며 자꾸 들떴는데…. 이제야 실감이 되다니. 그가 저 우주의 별이 됐다는 게. “캄캄한 우주의 공간을 쉼 없이 걸어오는 빛의 발자국을 상상해 보는 순간이 있다. 그 칠흑의 어둠 속에서 하나의 형상을 위해 걸어오는// 빛의 발자국들,// 숨이 멎는 듯한 순간의, 그 빛의 산란들--.”(‘밤과 사물 2’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