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세계와우리] ‘한·일 전략적 동업’ 첫발 뗀 안동회담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미·중 회담 속 이해관계 맞물려
안보 분야 등 협력 필요성 부각
전략적 동업 시대 여는 전환점
역사와 병행해 협력 틀 구축을

지난 5월19일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양국 정상이 고향을 상호 방문하는 셔틀외교는 개인적인 친분을 돈독히 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은 그 직전 베이징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 그리고 이란전쟁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동 한·일 정상회담이 나중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양국이 최초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안보전략에 동병상련하며 주요 광물 및 에너지 공급망과 안보에 관해 전략적 협력을 논의했다는 역사 전환적 이미지다.

 

이제까지 한·일관계는 불행한 과거사의 상흔이 자극하는 민족주의적 반감에 좌우되어 왔다. 양국 간의 안보협력은 냉전체제에서 미국의 정책 의도에 이끌려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다. 한·일 양국은 상대방이 미국과 중국에 고자질할까 봐 서로 속내를 협의할 수도 없었다. 미국과 중국은 손쉽게 한국과 일본을 분할관리(devide & rule)했다. 일본은 남북관계에는 훼방꾼 역할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한·일관계를 제약하던 이러한 모든 요소가 일거에 반전했다. 한·일 간 국력의 차이는 이미 1:3 이하로 줄어들었다. 과거사에 연루되지 않은 세대의 양국 젊은이들은 순수하게 서로 경계 없이 교류한다. 국제 정세도 변했다.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

특히 “대만 유사는 일본의 존립 위기” 발언으로 중·일관계를 악화시킨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곤경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연말 발표된 안보전략에서 중국과 현상 유지를 위한 타협을 시사했다. 5월14일 미·중 정상이 “건설적이고 전략적인 안정적 관계”에 합의한 것은 중국에 대결적 강경외교를 해오던 일본에는 큰 충격이었다. 일본이 오히려 미·중관계의 걸림돌이 된 셈이다. 그래서 일본 언론도 “시진핑이 일본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데 주목하며 미·중 간 타협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국내 정치 입지도 약화되고 있다. 국채금리의 지속적 상승으로 적극 재정과 소비세 경감 공약도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방위비 재원 마련도 어렵다. 자민당의 안보조사회는 구체적인 증액 목표 수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헌법 개정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게다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도 안보위기로 확대되었다. 70%에 가까웠던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은 50%로 떨어졌다. 해체되었던 자민당 내 파벌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5월 중 베트남, 호주, 그리고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 정상외교를 통해 중국과 미국에 일본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일 정상회담은 가장 중요한 외교적 대응일 것이다. 마침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의 변덕과 경제 안보에 대응해야 하는 공통의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전략은 서로 달라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지향점은 같다.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의 훼방꾼 노릇을 할 여유도 사라졌다. 그래서 안동 회담은 ‘한·일 전략적 동업’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에 선의는 없다. 서로 의심하지만 필요할 때 협력한다.

 

우호관계는 협력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국가는 우호적일 때도 서로 의심한다. 외교 참모들은 창의적인 후속 외교를 통해 일본과 역사문제를 계속 논의하면서도 전략적 동업이 계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일 전략적 동반자관계’ 수립: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안보협력: 공급망 안전 협력, 무역·금융·산업·기술 협력 등 포괄적 경제협력: ‘장관급 전략대화 채널’ 수립: 안보 분야의 신뢰 구축 조치(CBM)를 모델로 하는 ‘역사교육의 신뢰 구축 조치’: 2000년 초 시도되었던 ‘한일역사공동연구회’ 부활: 유럽 역사교사협의회(‘유로클리오’)를 모델로 ‘한일역사교사협의회’ 결성 지원: 민간교류와 문화협력 촉진 등을 위한 제도화를 추진할 수 있다.

 

물론 이 대통령도 이에 필요한 국내 정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차기 셔틀정상회담은 도쿄와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 다음 정상회담을 일본의 유명 온천관광지에서 이어간다면 종내에는 “한·일 정상이 무슨 놀이 하냐”는 비아냥스러운 비판을 당할 우려도 있다. 한국은 외교, 특히 한·일관계에서만큼은 신중하고 비장해야 한다. 과유불급은 중요한 외교 교훈이다.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