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이는 건축/방명세/나비의활주로/2만3000원
오늘의 대한민국은 한 분야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업적을 쌓은 여러 장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산동네 방 두 칸짜리 사글세에서 사형제와 함께 자라나서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 정림건축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저자도 그중 한 명이다. 첫 직장에서만 36년을 보내며 여러 분야를 두루 거쳐 정림CM 대표 자리에까지 올라 자신의 건축 인생을 직접 글과 스케치로 정리했다.
250여 부족이 모인 국가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병원·학교보다 박물관을 먼저 짓고 싶어 한 콩고민주공화국, 다음 세대에 건네는 건축인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짓고 쓰고 돌려준 건축물이 된 평창 개폐회식장, 그리고 청계천 삼일빌딩 등에 쌓인 사연이 술술 읽힌다.
전남 광양의 해비타트 현장도 그중 하나다. 회사 지시로 참여한 사회공헌 사업이었는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땀 흘려 집 한 채를 올리면서 건축이 도면 위의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을 위한 일임을 몸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여러 코이카 사업에 참여하면서 아이티·볼리비아·콜롬비아·과테말라·파라과이·에티오피아 등 10여 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현장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때 출장수첩에 메모하고 스케치한 20여 권은 2025년 첫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수첩 속에는 화려한 준공 사진 대신 사람이 있다. 콜롬비아 재활센터에서 웃음을 되찾은 지뢰 부상병, 아리랑을 부르는 에티오피아 한글학교 아이들, 팬데믹에도 파라과이 현장을 떠나지 않은 이들의 얼굴이다.
건축 잡지의 사진은 대개 사람이 빠진 채 촬영된다. 사람이 없을 때 건축이 가장 잘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저자는 그 통념에 의문을 품으며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보는 것을 넘어 그 존재와 삶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시선이 건축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국내 건축가의 ‘사관학교’라는 평판을 가진 정림건축에서 저자는 설계에서 기획으로, 다시 주거와 해외 사업, 시공을 관리하는 CM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떠밀리듯 옮긴 적도 많았고 한때는 회사에서 잊힌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설계실 밖으로 나가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건축의 안과 밖을 두루 살핀 그 이력이 결국 건축을 ‘짓는 일’에서 ‘프로듀싱하는 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했다.
그렇게 넓힌 시야 끝에서 저자가 길어 올린 결론은 건축이 수평과 수직, 비용과 일정 같은 숫자만 다루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을 지킬지, 어디까지 책임질지, 왜 그 일을 하는지를 함께 묻는 판단의 기준이 움직일 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된다. 역량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역량이 어디를 향할지 결정하는 것은 성품이고 왜 그 일을 하는가를 붙드는 것은 소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