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봉쇄 사태가 공권력 투입으로 일단락됐다. 지난 3일 오후 10시부터 시작된 대치는 약 35시간 만에 종료됐고 투표소에 갇혀 있던 투표함 2개(약 2000표)도 개표소로 이송돼 오세훈 서울시장, 이수희 송파구청장 등의 당선이 확정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투표권을 침해당한 유권자의 국가배상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는 한편, 재발방지를 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합리적인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5일 오전 경찰은 기동대를 투입해 투표소를 봉쇄하고 있던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를 필두로 한 시위대 100여명을 강제 해산하고 투표함을 반출했다. 해당 투표함에는 약 2000명의 투표 결과가 담겼다.
6·3 지방선거 당일인 지난 3일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가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됐다. 강남·송파·광진구 내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후 추가 투표가 이뤄졌지만 송파구 잠실7동 제2 투표소의 경우 개표가 한참 지난 오후 10시까지 투표가 진행됐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부정선거, 선거 무효”를 외치며 투표함 봉인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선관위 “재선거 사유 안 돼” 법조계 “국가손해배상 가능”
투표지 부족 사태 후폭풍은 법정으로 번졌다. 4일 헌법재판소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유권자의 선거권 침해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가 공식 접수됐다. 도태우 변호사 등 법조계 일각에서도 가처분 신청과 선거무효소송을 예고하며 전방위적인 법적 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중앙선관위는 사태 직후 서울 시내 14개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이 발생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한다”면서도 투표용지 부족이 선거 연기나 재선거의 사유는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후보 간 격차 커 ‘재투표’의 가능성 낮아
법조계에서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인 ‘참정권’이 침해당한 만큼, 헌법소원은 물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길이 열렸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가가 투표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유권자가 표를 행사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헌법소원의 경우, 선거무효소송 등 다른 구제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한다는 ‘보충성의 원칙’ 때문에 헌재가 곧바로 위헌 결정을 내리기보다 각하하거나 선거소송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재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24조에 따르면, 법원은 선거 과정에서 규정 위반이 발생했고, ‘그것이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 선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판결할 수 있다. 즉 ‘득표 차 < 투표 불능 유권자 수’라는 공식이 성립할 경우에 가능하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강석 송파구청장 등 해당 투표소와 연관된 당선자들과 2위의 표차가 2000표를 훌쩍 넘어 재투표 요건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관 겸임 비상임 선관위원장 바꿔야”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선관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현직 대법관이 호선을 거쳐 겸임하는 비상임인 선관위원장이 ‘선거’라는 막중한 임무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법과 선거관리위원회법은 중앙선관위를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등 총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중 상임위원은 단 1명에 불과하다.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위원 중 호선하며, 선관위원 임기는 법적으로 6년이 보장된다.
현직인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경우 올 3월3일 임기 만료로 현직 대법관 신분을 벗어난 지 95일째 선관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법관을 퇴임하면 선관위원장직에서도 동시에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후임 인선 절차가 막히면서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대로 된 수장없는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우니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을 모두 상임으로 바꾸고 겸직도 없애야 한다”며 “이와 관련해 현직이 아닌 전직 대법관을 추천하는 방법과 국회 재적의원 3분의2의 찬성으로 선출하는 방법 등 중립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 등이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시간과 비용을 들이더라도 선거 때 임시로 고용하는 선거관리원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