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을 따라 달리던 사람들이 편의점 앞에서 물을 사고, 백화점 안 러닝 매장에서 신발을 신어본다. 예전에는 운동장과 공원에 머물던 러닝이 이제 유통 매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운동화 한 켤레를 고르는 일이 건강 관리이자 취미, SNS 인증, 모임 참여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1회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생활체육에 참여한 비율은 62.9%였다. 규칙적 체육활동 참여자 가운데 달리기(조깅·마라톤 포함)를 주요 종목으로 꼽은 비율은 7.7%로, 2024년 4.8%보다 높아졌다. 러닝이 일부 마니아 운동을 넘어 일상 소비와 맞물릴 기반이 넓어진 셈이다.
유통업계도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편의점과 백화점, 스포츠 브랜드들은 러닝족을 겨냥한 전용 공간과 체험 프로그램을 늘리며 고객 확보 경쟁에 들어갔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는 최근 스포츠 시계 브랜드 가민과 손잡고 ‘CU 러닝 멤버스’ 모집에 나섰다. 참여 고객은 추첨을 통해 여의도 일대에서 열리는 ‘나이트런’과 ‘모닝런’에 참가할 수 있다.
CU가 지난 3월 선보인 러닝 멤버스는 온라인 기록과 오프라인 구매 혜택을 연결한 서비스다. 러닝 플랫폼 ‘런데이’와 자체 애플리케이션 ‘포켓CU’를 연동해 달린 거리와 상품 혜택을 묶었다.
가입 고객은 러닝을 마치면 하루 1회 생수 교환권을 받을 수 있다. 3㎞ 이상 달리기에 성공하면 이온음료, 단백질바, CU포인트, 할인쿠폰 등을 받을 수 있는 룰렛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누적 거리 100㎞를 채우면 멤버십 포인트 전환 혜택도 제공된다.
CU는 올해부터 한강공원 안에 러닝스테이션 콘셉트 특화 점포도 운영하고 있다. 운동 전후 음료와 간식을 사는 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러너들이 모이고 쉬고 정보를 나누는 공간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백화점업계도 러닝 수요를 잡기 위해 매장 구성을 바꾸고 있다. 핵심은 제품 진열이 아니라 체험이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잠실점에 글로벌 러닝화 브랜드 써코니의 국내 1호 매장을 열었다. 전문 러닝 크루와 함께하는 러닝 세션도 운영한다. 앞서 4월에는 잠실 롯데월드몰 1층에서 ‘러닝 부트 캠프’ 팝업을 열었다.
이 팝업에서는 러닝화와 의류, 용품, 웨어러블 기기 판매뿐 아니라 러닝 세션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됐다. 고객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브랜드 경험을 몸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현대백화점은 3월 더현대 서울 4층에 535㎡ 규모의 ‘더현대 러닝 클럽’을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러닝 브랜드가 참여하는 운동 세션이 매달 3~4회 열린다. 상품을 직접 착용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더현대 러닝 클럽 안에는 현대백화점그룹 패션 계열사 한섬의 스포츠 전문관 ‘이큐엘 퍼포먼스 클럽’도 들어섰다. 온라인 편집숍 이큐엘을 기반으로 한 매장으로, 러닝을 비롯한 스포츠 브랜드를 앞세워 2030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여의도에 러닝 콘텐츠를 배치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더현대 서울 주변에는 여의나루역 러너스테이션, 한강공원, 여의도공원, 마포대교 등 달리기 좋은 동선이 이어져 있다. 백화점 안에서 고른 제품을 바로 밖에서 경험할 수 있는 구조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도 러닝 체험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나이키는 5월 16일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일에 맞춰 대규모 러닝 이벤트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신청한 장소에서 출발해 최소 5㎞ 이상을 달린 뒤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뉴발란스는 5월부터 여의도 한강공원 이크루즈 선착장에 러닝 체험 공간인 ‘여의도 런 허브’를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은 러닝화와 기능성 의류를 무료로 빌려 한강 러닝 코스를 직접 뛰어볼 수 있다.
러닝 시장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스포츠 소비의 확장이 있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4년 기준 스포츠산업조사에서 국내 스포츠산업 매출액은 84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4.5%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스포츠용품업도 성장세를 보였다.
러닝은 진입 장벽이 낮은 운동이다.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고, 혼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의 러닝 소비는 단순하지 않다. 수십만원대 러닝화, 기능성 의류, 스마트워치, 에너지 젤, 회복용 음료까지 구매 품목이 세분화됐다.
SNS도 시장을 키웠다. 러닝 기록을 캡처해 올리고, 크루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완주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했다. 달리기는 몸을 움직이는 행위인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됐다.
유통업계가 러닝에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너는 한 번 뛰고 끝나는 고객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물을 사고, 장비를 바꾸고, 모임에 참여하고, 기록을 남긴다. 매장 입장에서는 구매와 방문, 체류, 재방문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소비층이다.
업계 관계자는 “러닝은 상품 하나를 파는 시장이 아니라 고객의 루틴 안으로 들어가는 시장에 가깝다”며 “앞으로는 누가 더 자연스럽게 러너들의 동선과 커뮤니티를 붙잡느냐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