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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섭의전쟁이야기] 군대가 국가를 만든 나라,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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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인구는 적고 국토는 좁으며 사방이 적대적인 세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최강 수준의 군사력에 있었다.

이스라엘군의 기원은 20세기 초 팔레스타인 유대인 정착촌을 지키기 위해 자생적으로 등장한 소규모 무장 조직들에 있다. 그 중심에는 1909년 창설된 하쇼메르가 있었다. 전사이자 농부였던 하쇼메르 대원들은 직접 땅을 일구고 무기를 들어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다. 훗날 이스라엘군을 특징짓는 무장한 시민의 원형은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1978년 미국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역사적인 평화협정인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체결했다.
1978년 미국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역사적인 평화협정인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체결했다.

1920년에는 하쇼메르의 정신을 계승한 하가나가 창설되어 유대인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방위 조직으로 성장했다. 1941년에는 하가나 내부에 상비 전투부대인 팔마흐가 창설되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이 모든 조직은 이스라엘군으로 통합되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가가 먼저 생기고 군대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반대였다. 군사 조직이 먼저 형성되었고, 그것이 국가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이자 국방장관이었던 벤구리온은 군대를 전쟁 수행뿐 아니라 국민을 만드는 기구로 보았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은 군 복무를 통해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이스라엘은 독립전쟁을 포함한 연이은 중동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군사력으로 국가의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은 그 확신에 균열을 안겼지만,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한편, 이집트와의 평화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직면한 전쟁의 성격도 달라졌다. 국가 간 전쟁에서의 승리 공식은 비정규전 양상의 장기 분쟁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1982년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까지 진격했지만 레바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인티파다는 최첨단 무기로도 저항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은 또 다른 충격이었고, 이후 가자지구 군사작전은 장기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우세한 군사력은 국가의 생존을 보장했지만 정치적 안정까지 가져오지는 못했다. 하쇼메르 이래 형성된 무장한 시민이라는 정체성과 군사적 전통은 분명 이스라엘을 생존하게 만든 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군사적 해법을 당연시하고 다른 선택을 낯설게 만든 틀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직면한 문제는 대내외적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할 것인가이다. 군대가 국가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평화를 만드는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