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보험사들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영업 현장과 상품 기획, 보상 심사 등 업무 전반에 도입하며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기조로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사고 발생 이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수동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고객 질병을 사전 예방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는 능동적 형태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추세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사후 보장 중심에서 벗어나 일상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적극 지원하는 AI 융합형 보험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DB생명이 이달 선보인 대화형 ‘AI 건강코칭’ 서비스와 이를 탑재한 ‘AI 라이프케어’ 정기보험 및 암보험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객이 간편 인증을 거치면 흩어져 있던 최대 10년치 건강검진 기록을 한곳으로 연동해 건강 변화 흐름을 분석한다. 과거 방식처럼 검진 결과를 단순히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 누적된 이력을 종합해 개인 맞춤형 식단 가이드와 구체적인 일상 운동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상품은 고객 건강검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 등급을 슈퍼건강체, 건강체, 표준체로 세분화해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가입 후 최대 10년 동안 매년 등급을 재평가받아 건강 상태가 개선되면 추가 보험료 할인을 제공하고, 지속적인 실천을 유도하는 건강챌린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스마트폰 속 AI가 건강 상태를 밀착 관리하며 고객의 장기적인 건강 수명 연장과 보험사 손해율 안정화를 동시에 꾀한다. DB생명 관계자는 “이번 신상품은 AI 기술과 헬스케어를 보험에 유기적으로 접목해 고객의 건강관리와 보장 혜택을 동시에 극대화 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영업현장에도 ‘AI 조력자’
일선 재무설계사(FP) 역량에 크게 의존했던 가입 설계 과정에도 AI가 든든한 조력자로 나섰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말 재무설계사를 위해 ‘보장분석 AI 서포터’와 ‘FP소장 AI 어시스턴트’를 도입했다.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 사내 내부망에서도 안전하게 생성형 AI를 활용한다.
보장분석 AI 서포터는 고객의 기존 보장 내역을 요약하고 맞춤형 대안을 제시해 설계사가 빠르고 정교한 상담을 진행하도록 돕는다. FP소장 AI 어시스턴트는 실적 목표 관리, 수수료 예측 등을 맡아 일선 영업 운영 효율성을 높인다. 임직원을 위한 전용 생성형 AI 서비스인 ‘AI 데스크’ 역시 시범 운영 4개월간 하루 평균 1360여건의 질의가 접수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문서 초안 작성이나 개발 업무의 에러 수정은 물론 전문적인 법무 규정 상담까지 지원한다.
NH농협생명은 현장에 특화한 ‘AI가입설계시스템’을 개발해 기술 특허와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동시 출원했다. 기존 보장 상황과 납입 여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상품을 제안하고, 복잡한 특약 규칙을 시스템이 알아서 반영해 설계 시간을 크게 단축한다. 치매보험이나 건강보험처럼 설계 난도가 높은 보장성 상품도 신규 모집인이 원활하게 다룰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췄다.
박병희 NH농협생명 대표이사는 “AI가입설계시스템은 단순한 디지털 도입을 넘어 농축협 보험영업 환경에 최적화된 현장 중심 혁신 서비스”라며 “이번 특허 출원을 계기로 AI 기반 맞춤형 보험서비스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화생명 역시 자체 AI 시스템을 전방위로 활용하며 일선 설계사들의 대면 채널 영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신인 설계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AI가 방대한 상품 정보와 우수 설계사들의 영업 노하우를 학습, 고객 성향과 상황에 맞는 최적의 화법을 실시간으로 코칭해 주는 방식이다. 여기에 고객이 기존에 가입한 여러 보험 내역을 AI가 빠르게 스캔하고 분석하여 중복되거나 부족한 보장 영역을 짚어줌으로써 더 객관적이고 신뢰도 높은 맞춤형 상품 설계를 지원한다.
◆보험금 심사·사기 탐지도
보상 관리와 지급 심사 부문에서도 첨단 AI 기술 도입이 확산하고 있다. 고령화 대비 상품 수요 확대로 보험금 청구 건수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점차 지능화되는 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iM라이프는 데이터 머신러닝 기반 분석 모형과 규칙 기반 심사 체계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의 보험사기탐지시스템(FDS)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사고 접수부터 심사, 지급 전 과정에 자동화 프로세스를 접목하고 네트워크 분석 기술을 함께 동원해 조직형 보험사기를 정밀하게 걸러낸다.
고도화된 시스템은 이상 징후 탐지 정확도를 한층 높이면서 정당한 청구 건의 지급 지연 요인을 크게 줄여 전체적인 처리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 실무자의 업무 편의성을 개선하고 심사 기준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효과도 크다. 박경원 iM라이프 대표는 “보험금은 신속하게, 부정 청구는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 고객에게 지켜야 할 기본 약속”이라며 “FDS 고도화는 그 약속을 데이터와 기술로 뒷받침하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가 24시간 가입자의 일상을 살피는 ‘전담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보험의 핵심 기능을 사후 보상에서 사전 예방으로 진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복잡한 의학 정보의 장벽을 낮춰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건강 관리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김수근 국제나은병원 특수검진센터 원장은 최근 생명보험협회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질병 발생 후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는 데 집중했던 전통적인 보험이 이제는 AI와 결합해 질병 자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케어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며 “AI가 제안하는 일상 속 작은 습관들이 모여 고객의 건강을 지킬 때, 보험은 단순한 금융상품을 넘어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