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은 재선거를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 손에는 저마다 삼삼오오 작은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태극기가 없는 이들도 스케치북에 그린 태극기를 들었다. 이들은 개표소에서 투표함을 반출하지 못하도록 진을 치고 경찰 등 오가는 이들을 경계했다. 여러 기물로 출입구를 봉쇄한 곳도 보였다. 20, 30대가 주축인 이번 시위에선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기보다 선관위 정상화 등 올바른 투표문화 촉구가 주를 이뤘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서울 송파구 잠실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에서 이날로 사흘째 진행됐다. 이날 오후 5시30분 기준 현장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2만여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했다. 전날 밤에는 인원이 최대 3만6000여명까지 늘기도 했다.
이들이 투표함 반출을 저지한다며 출입구를 봉쇄한 경기장 내부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있었던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옮겨져 개표를 마친 투표함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20∼30명이 전날 밤 경기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시위 참가자는 5일 개표소를 드나드는 관계자를 대상으로 신분증과 가방 등 확인을 요구하는 등 수색했다.
시위 참가자 중 상당수는 2030세대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7일 오후 6시 올림픽공원 내 인구는 3만∼3만2000명으로 집계됐는데, 54.9%가 2030세대로 60대 이상 노년층 비중(10.6%)과 차이가 컸다.
친구 2명과 함께 올림픽공원을 찾은 직장인 김모(27)씨는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참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고 싶어 나왔다”고 밝혔다.
2030세대는 자원봉사도 자처했다.
왼쪽 소매에 청테이프를 붙인 이들은 태극기를 그리고, 물품을 나눠주면서 동선 정리에도 나섰다. 자원봉사자 박모(26)씨는 “밤새 태극기를 그려 나눠줬다. 집회를 운영하는 이들이 있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듣고 참가했지만, 따로 주체나 지도부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주말 새 2030세대가 주축으로 나서면서 초반 자유와혁신 황교안 대표, 유튜버 전한길씨,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 교수 등 극우 인사들이 주도하던 시위 양상도 변했다.
상당수가 “집회가 특정 정파를 위한 것으로 왜곡돼선 안 된다”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올림픽공원 곳곳엔 ‘재선거, 참정권 침해, 애국가만 외쳐달라’, ‘성조기가 아닌 태극기만 들어달라’는 등 지침이 게재됐다. ‘부정선거론자’로 매도되는 걸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한모(27)씨는 “투표 못한 사람들의 참정권이 침해당했다는 것 말고 다른 의견이 들어가선 안 된다”고 했고, 이영주(30)씨도 “지금은 다른 메시지가 나올 때가 아니다. 바르게 투표가 진행되는 게 먼저”라고 밝혔다.
일부 반발도 감지됐다. 일부 참가자들은 시위 지침을 설명하던 자원봉사자에게 “왜 선동하나”, “이건 부정선거인데 왜 말 못하게 하냐”, “성조기도 같이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부정선거론자들은 오후 4시30분쯤 모여 성조기를 들고 부정선거를 외치면서 경기장 인근을 행진했다. ‘STOP THE STEAL’, ‘트루스포럼’ 등 부정선거 관련 슬로건?단체가 적힌 피켓도 들었다. 현장 투입된 경찰이 욕설을 듣는 일도 발생했다. 앞서 일부 시위대는 한 기동단 소속 A경정이 중국인으로 의심된다며 비하 욕설을 하고 이를 촬영해 온라인상에 퍼뜨렸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현재 기동대 6개 중대 포함 350명의 인원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지만, 강제 해산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날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자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개인정보위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5일 오후 8시30분 투표소에서 이름과 성별 등이 적힌 선거인명부 대조전표가 외부에 노출된 사안과 관련해 개인정보 유출신고를 했다. 투표함이 개표소로 이송된 후, 투표소 안으로 들어간 시위대가 현장에 남아 있던 선거인명부 대조전표를 발견해 촬영하고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과정에서 투표자 이름과 성별 등 개인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위법 사항이 발견되고 공식적인 조사 착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식 조사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이날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박정보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와 현장 경찰관들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서민위는 경찰이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 반출 과정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과잉 진압을 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