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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장관 해외 출장에 부인·자녀 동행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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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두환정부가 198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혈안이 돼 있던 1981년의 일이다. 올림픽 개최지를 투표로 정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독일(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가운데 어느 동남아 국가의 IOC 위원이 불참할 것 같다는 첩보가 우리 정부에 입수됐다. 그 나라 대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IOC 위원을 바덴바덴으로 보내야 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한국 대사와 만난 IOC 위원은 건강 문제로 해외 출장이 어렵다고 둘러댔다. 그러면서 “간병인 동행을 한국이 지원하면 재고(再考)해 보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간병인은 다름아닌 IOC 위원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해당 국가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나라였다. 결국 우리 정부의 비용 부담으로 IOC 위원은 둘째 부인을 대동하고 바덴바덴으로 향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왼쪽)과 부인 제니퍼 헤그세스. 헤그세스 장관은 6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82주년 기념식에 미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하며 아내와 여섯 자녀를 동행해 구설에 올랐다. EPA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왼쪽)과 부인 제니퍼 헤그세스. 헤그세스 장관은 6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82주년 기념식에 미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하며 아내와 여섯 자녀를 동행해 구설에 올랐다. EPA연합뉴스

고위 공직자가 외국을 방문하며 배우자 등 가족을 동반하는 것은 구설에 오르기 십상이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과 영부인을 제외하면 ‘해외 출장은 엄연한 공무(公務) 수행인 만큼 가족 동행은 안 된다’는 견해가 특히 지배적인 듯하다. 1975년 12월부터 1980년 9월까지 5년 가까이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을 지낸 박동진 전 주미 대사는 이 점이 못내 불만스러웠다. 한국과 가까운 서방 국가들의 경우 외교관들 모임은 부부 동반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조심스럽게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자, 박 대통령이 “내가 언제 외무장관도 혼자 나가라고 했느냐”며 흔쾌히 부부 동반을 허락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비록 대통령이 발행한 ‘백지 수표’를 받아들긴 했으나 후임 외무장관들 입장에서 부부 동반 해외 출장은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 뒤를 이은 전두환 대통령은 서슬이 워낙 시퍼랬다. 제5공화국 시절 외무장관들은 청와대 기류를 살피며 어쩌다 한번 부인을 데리고 외국에 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이 들어서며 비로소 분위기가 달라졌다. 1988년 12월 취임한 최호중 외무장관은 1990년 12월까지 약 2년간 재임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 해외 순방을 수행한 경우 말고는 외국에 나갈 때 거의 다 아내와 함께했다”고 술회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가운데)이 6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82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귀빈석에 앉아 있다. 왼쪽은 재러드 쿠슈너 주(駐)프랑스 미국 대사, 오른쪽은 엘브리지 콜비 전쟁부 정책차관. AFP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가운데)이 6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82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귀빈석에 앉아 있다. 왼쪽은 재러드 쿠슈너 주(駐)프랑스 미국 대사, 오른쪽은 엘브리지 콜비 전쟁부 정책차관.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옛 국방부) 장관의 해외 출장이 논란에 휩싸였다. 헤그세스는 ‘디데이’(D-Day),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 82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6일 프랑스를 방문했다. 그런데 출장길에 아내 제니퍼 헤그세스 그리고 여섯 자녀와 동행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문제를 제기하자 전쟁부 숀 파넬 대변인은 “장관은 모든 윤리 규정과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인 등 가족의 여행 경비는 헤그세스 본인이 지불했다는 뜻이다. 하나 전쟁장관 및 그 가족 경호를 담당하는 육군 범죄수사국(CID)의 부담과 각종 비용은 부쩍 늘었다. 이 점에 관해 전쟁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공직자의 처신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