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 6일 새벽 서울 외환시장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561.5원까지 올라 1560원을 넘어섰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6일(장중 고가 1597.0원) 후 약 17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2분기 평균 환율(주간 거래 종가 기준)은 1490.98원으로 1998년 1분기 이후 약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고, 공항에서는 미국 달러 현찰 구매 환율이 이미 1620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점은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1852.5원) 기록됐다.
환율 급등은 대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미국의 5월 고용지표가 예상 밖 호조를 보이면서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강화됐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4월 이후 2개월 만에 100을 넘어섰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대 후반으로 오른 점도 위험 회피 심리(달러 강세 및 원화 약세)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도 원화 약세 압력을 더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지난달 7일부터 지난 5일까지 20거래일 연속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해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시장의 설명이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서만 국내 주식을 120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는데, 이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악화를 반영한다기보다 주식시장 호조에 따른 차익 실현과 투자 비중 조정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 외환 당국의 진단이다. 지난 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54% 내린 8160.59에 마감했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 연 3.858%로 약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 당국은 시장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7일 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함께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F4)를 열고, 과도한 변동성과 일방향 쏠림은 용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역외에서 이뤄지는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를 국내 외환시장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으며, 원화 약세에 편승한 투기적 거래를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수입대금 결제를 앞당기고 수출대금 회수를 미루는 이른바 ‘리드 앤드 래그’ 형태의 불법 외환거래를 집중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외환 보유액은 4269억 9000만달러로, 규모 기준 세계 12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번 충격에 대응할 구조적 안전판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부와 국민연금은 외환 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한 앞서 세 가지 장치를 마련해 뒀다. 거주자의 해외 자금을 국내로 되돌리는 국내시장복귀계좌(RIA),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그리고 지난 4월 발표된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다. 세 정책은 모두 외환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환율을 떠받치는 안전판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는 전략적 환 헤지를 통해 환율을 방어하는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해외 투자 자산의 일부를 환 헤지 해 달러를 시장에 내놓는데, 뉴프레임 워크를 계기로 그 비율을 기존 10%에서 15%로 높였다. 한은과 맺은 650억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도 언제든지 활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율이 급등하는 국면에서 국민연금발(發) 달러 매도가 원화 가치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기대이다. 다만 헤지 발동 기준이 시장에 노출되면 효과가 줄어드는 만큼 탄력적이고 신축적인 집행이 관건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달러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 국채는 지난 4월부터 WGBI에 단계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해 오는 11월 마무리될 예정으로, 이 지수를 추종하는 외국인의 채권 투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그 유입 규모를 70조~90조원 안팎으로 추산한다.
국민연금이 2027년 초부터 직접 외화채권을 발행해 달러를 직접 조달하기로 한 점도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를 분산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외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할 준비를 갖추고, 위기 시 활용할 수 있는 통화 스와프 등 대외 안전장치를 점검하는 것도 시장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제언이 함께 나온다.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자본시장의 신뢰를 끌어올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등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조치가 시장에서 안착하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가 완화되면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환율 안정과 자본시장 신뢰가 서로 맞물려 움직인다는 기대에서다.
한·미 자본시장 간 제도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외국인투자자의 신뢰 기반을 다지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협력이 환율을 직접 좌우하는 수단은 아니다. 다만 결제 주기 단축(T+1), 시장 인프라 현대화, 글로벌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 개선 등은 외국인이 한국 시장을 평가할 때 민감하게 참조하는 영역이다. 한미 자본시장 간 공식 협력을 통해 제도적 정합성과 국제 기준 부합도를 높이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과 외국인투자자 신뢰 향상을 위한 인프라를 한층 단단히 하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견조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지난달 수출 실적은 877억5000만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와 4200억 달러대의 외환 보유액은 단기 충격을 흡수할 여력으로 평가된다. 이번 환율 급등이 대외 요인에서 비롯된 만큼 이미 마련된 구조적 안전판을 적시에 가동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면 외환시장이 점차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