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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수아비’가 남긴 질문…박준영 변호사가 벗겨낸 ‘누명’ 사건들

당시 경찰, 허위 자백 강요…재심 통해 누명 벗어
누리꾼, “억울한 세월 어떻게 보상하나”

지난달 26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ENA 드라마 ‘허수아비’가 방영 종료됐다. ‘통쾌한 결말’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조명했던 전개 방식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도 관심이 쏠렸다.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돼 20여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의 사례가 재조명 되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윤씨의 세월은 누가 보상하나’, ‘공권력에 의한 국가 폭력이다’ 등 누리꾼의 반응이 이어졌다. 윤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곁에서 변호를 했던 박준영 변호사의 역할이 있었다. 박 변호사가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겨냈던 다른 사건들도 함께 살펴봤다.

 

ENA 드라마 ‘허수아비’의 한 장면. 스튜디오 지니 제공
ENA 드라마 ‘허수아비’의 한 장면. 스튜디오 지니 제공

◆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살인 누명 최모씨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쯤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한 택시기사가 어깨와 가슴 등을 12차례 흉기에 찔려 숨졌다. 사건 현장 인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당시 15세 최씨는 목격자로 발견됐다. 그는 “다급히 뛰어가는 남자를 봤다”고 진술했지만, 며칠 뒤 목격자가 아닌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최씨의 자백을 근거로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최씨의 자백은 경찰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경찰은 그를 체포한 뒤 모텔로 데려가 폭행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최씨는 가혹행위 끝에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고,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하지만 3년 뒤 군산경찰서 강력팀 황상만 반장이 ‘진범이 따로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내사에 착수했고, 결국 진범 김씨와 공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자백했지만, 자백 외에 뚜렷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최씨는 자백만으로 유죄가 인정됐지만, 정작 진범들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처벌받지 않은 것이다.

 

이후 만기 출소한 최씨는 경찰의 강압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2016년 1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 변호사는 최씨를 변호하며 그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데 힘을 보탰다. 재심 과정과 판결 내용은 2017년 개봉한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해 2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해 2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강도 누명 3인

 

1999년 2월 6일, 3인조 강도 일당이 당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마켓인 ‘나라슈퍼’에 침입해 부부와 할머니 유모씨를 위협하며 금품을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유씨는 결국 숨졌다.

 

이후 유씨의 조카며느리 최모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인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3인조 강도였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이를 토대로 3명의 피의자를 검거했다.

 

그러나 범인으로 지목돼 붙잡힌 이들은 경상도 사투리와 거리가 먼 삼례 출신 청년들이었다. 당시 피의자로 지목된 강모씨, 임모씨, 최모씨 가운데 강씨와 최씨는 지적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들은 진범이 아니었다.

 

경찰은 현장검증 과정에서도 이들에게 “너희가 이렇게 했잖아”, “빨리 해봐”라고 다그치며 범행 재연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범이 아닌 세 사람은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범행을 재연하면서 점점 누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누명을 쓴 세 사람 가운데 일부는 한글을 읽고 쓰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강씨를 통해 당시 진술조서가 누군가 미리 작성해 놓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건 발생 약 9개월 만인 그해 11월에 부산에서 또 다른 3인조 강도 일당이 붙잡히면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듯했다. 경찰이 이들의 여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당이 자신들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건 당시 피해자 유씨의 옷차림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후 자백이 번복됐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 측이 “범인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고 증언했음에도, 정작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던 삼례 출신 청년 세 사람은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다. 이들의 삶은 그렇게 송두리째 흔들렸다.

 

시간이 흐른 뒤인 2016년 1월, 이모씨가 자신이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며 나타났다. 그는 “늦게나마 죄를 밝히는 것이 죄 없는 세 청년과 돌아가신 피해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자백했다.

 

재심 전문 박 변호사는 이들의 재심을 맡았고, 진범 이씨의 증언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같은 해 10월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들의 사례는 단순히 과거 사법부의 오판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잘못된 수사와 판결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사법부가 과거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국민의 신뢰를 꾸준히 회복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법언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