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프랑스 칸 영화제 기간 중 열린 ‘한국영화의 밤’ 무대에서 한국인보다 더 유창한 한국어로 행사를 이끈 미국인이 있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세계에 소개해 온 번역가이자 프로듀서 마크 브라질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출신인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보 다 한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졌다. 지난 10년간 약 150편의 한국 독립·예술영화에 영어 자막을 입힌 그는 세계 관객과 한국을 이어온 ‘숨은 연결고리’다.
1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 골목길, 그가 운영하는 번역 작업실 ‘번역탕’ 한쪽 벽면은 그의 이력을 보여주는 영화 포스터로 빼곡했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 정윤석), ‘준하의 행성’(2018, 홍 형숙), ‘너에게 가는 길’(2021, 변규리), ‘미망’(김태양, 2023), ‘양양’(2024, 양주연)…. 수많은 작품이 그 의 손을 거쳐 번역되어 토론토·로테르담·암스테르담·런던·뉴욕 등지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 났다.
“원래는 집이나 카페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번역이 정말 외로운 일이더라고요. 온종일 모니터만 보게 되니까요.”
그래서 탄생한 공간이 번역탕이다. 대중탕 애호가인 그는 언젠가 번역 작업실과 목욕탕을 결합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번역’과 ‘목욕탕’을 합친 이름을 지었다. 지금의 번역탕은 사 철 문이 활짝 열린 동네 사랑방이다. 이웃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소규모 영화 상영회와 번역 워크 숍, 음악 공연이 열린다.
“하루에 대여섯 팀이 들를 때도 있어요. 동네 할머니들도 오시고 젊은 친구들도 와서 커피 마시 고 이야기하다 가죠. 사람들은 방해되지 않느냐고 걱정하는데 반대에요. 안 그러면 저는 하루 종 일 컴퓨터만 보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가 처음 한국을 찾은 건 16세 때였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다. “제가 자란 LA에는 재미 교포가 많아 한국 문화가 낯설지 않았어요. 비디오 가게 에는 한국영화 코너가 있었고요. 어릴 때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죠.”
짧은 한국 체류는 인생을 바꿨다. 홈스테이 가족과의 인연이 이어졌고, 그는 19세에 연세대 언더 우드국제대학 비교문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한국에 정착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CJ에서 약 4년간 교육·인사 업무를 담당했고, 퇴사 후에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영화 번역은 우연히 시작했다. 스타트업 사무실 맞은편에 입주해 있던 독립영화 프로듀서와의 인 연으로, 펑크 밴드 밤섬해적단의 행보를 따라간 다큐멘터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번역을 맡 게 된 것이 계기였다.
“노래 가사와 농담이 너무 많아서 번역하기 정말 어려웠는데, 어려워서 더 재미있었어요. 그 작품이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죠.” 이후 그는 영화 번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장편 독립·예술영화는 물론 단편영화와 학생 졸 업작품까지 가리지 않고 번역한다. “아마 저보다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없을걸요.”
그가 맡는 작업은 단순한 언어 번역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역사와 정서를 외국 관객에게 전달하 는 문화적 해설이다. “예를 들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대사 중 ‘전두환’이 나와요. 그 이름은 한 국인에게 수많은 맥락을 떠올리게 하죠. 그런데 외국인에게 그저 ‘Chun Doo-hwan’이라고 번역하 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한된 자막 공간 안에서 최대한 설명하려고 해요. 한국 사 람에게 당연한 걸 외국 관객도 느끼도록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AI 번역기가 전혀 할 수 없고, 한국 문화를 깊이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들을 특히 좋아해요.”
그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았지만, 새로운 영화를 번역할 때마다 또 모르는 맥락을 만난다” 며 “그럴 때는 아내에게도 묻고 친구들에게도 물어본다. 모르기 때문에 계속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번역가인 그의 명함에는 몇 년 전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추가됐다. 그가 번역한 김태양 감독의 ‘미망’이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해외 영화제 업무를 전담하기 시작했고, 2023년 김 감독이 몸담은 영화사 은하수에 메인프로듀셔로 합류하며 제작 영역까지 발을 넓힌 것.
현재 그는 내년 크랭크인을 목표로 김 감독의 장편 영화 ‘서울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독일 공동 제작이 확정된 작업이다. 올해만 해도 대만·독일·프랑스 파리, 칸을 오가며 작품을 피칭하고, 제작 파트너를 만나고, 해외 로케이션을 답사했다. 하반기에는 미국 일정도 예정돼 있다. 이 밖에도 대만·영국과 연계한 프로젝트를 포함해 총 4편의 작품을 개발 중이다.
그가 국제 공동제작에 집중하는 이유는 한국 독립영화가 처한 현실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독 립영화, 아트하우스 영화는 훨씬 만들기 어려워졌어요. 리스크가 적은 상업영화 쪽으로만 투자가 몰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여러 나라 제작사가 협력해 각국 공공 펀드와 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유럽식 공동제 작 모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받은 뒤 국내 시장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글로벌 퍼스트, 역수입’ 전략도 가능하다.
그는 “‘미망’도 토론토영화제에서 먼저 좋은 반응을 얻은 뒤 국내 개봉이 훨씬 수월해진 사례”라 며 “전 세계가 한국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하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제작이 어려워졌고 해외에서 먼 저 인정받은 뒤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야 하는 구조는 아이러니하다”고 짚었다.
프로듀서 네트워킹을 위해 참여한 칸 영화제에서도 그는 미팅 사이사이 번역 작업을 이어갔다. 자신을 여전히 “번역가가 본업인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번역 일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야 영화 만드는 일도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태양 감독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한층 커졌다. 그는 “김태양은 베스트 프 렌드이자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라며 “인생 한 번인데, 죽기 전에 (김태양과) 좋은 작품 몇 편은 남기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는 “한국 독립영화가 어렵다고 해서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동제작이든, 더 작은 규모의 제작이든 새로운 실험이 필요합니다. ‘돈이 없으니, 투자가 되지 않으니 한국 독립 영화는 죽었다’고 말하며 멈춰서는 안 돼요. 우리가 직접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