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해 경찰이 강제수사 수순에 돌입하며 검경 합동수사본부 출범이 임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선관위를 향해 “민주국가를 깡그리 망가뜨렸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 가운데, 개표소가 마련된 올림픽공원에서는 시위대가 10대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가방을 검사하고 외신기자를 위협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 경찰의 이례적 속도전…검경 합수본 출범 초읽기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8일 오전 9시 30분쯤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측을 상대로 선관위 간부들의 직무유기 혐의 사건 고발인 조사를 벌였다.
이날 경찰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고발한 보수성향 시민단체 관계자를 소환해 약 2시간 30분간 고발 경위를 청취했다.
경찰은 언론 공지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지 못한 시민과 선거 사무에 동원된 공무원들을 주말 사이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투표지가 모자랐던 지역의 선거 종사자들이 나눈 메신저 대화방 기록을 확보하고, 투표용지를 공급한 인쇄 업체도 특정한 상태다.
고발인 조사 직후 내용을 검토해 참고인 조사로 넘어가는 통상적 절차를 깨고 주말부터 전방위 조사를 벌이는 것은,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번 사건의 수사 속도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검찰과 경찰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 체제로 조만간 전환될 전망이다.
경찰은 하루 이틀 내 검찰과 협의해 합수본 파견 인력을 확정할 예정이며, 그전까지 독자적인 수사 진척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 2694건 선거범죄 몸살…국가수사본부 엄정 대응 예고
이번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접수된 선거범죄는 무려 2694건에 달한다.
경찰은 연루된 4402명 중 289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8명은 구속됐다. 나머지 3538명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단기간에 2694건의 고발과 신고가 집중된 것은 투표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 역시 간담회에서 “접수된 채증 자료를 바탕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타협 없이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 “제발요” 간청에도 짐 뒤진 시위대…외신기자 위협까지
개표소가 마련된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은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의해 연일 봉쇄된 상태다.
이날 오전 10시쯤 태극마크가 새겨진 선수복을 입은 핸드볼 여성 유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6명이 도착해 시위대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오는 24일 중국 산시성 진중시에서 열리는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둔 선수들이 인근 한국체육대학교로 훈련장을 옮기기 위해 경기장 내 훈련기구를 가지러 온 것이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들은 “핸드볼 선수인지 어떻게 아느냐”, “얼굴 대조를 위해 경기 영상을 보여달라”며 이들의 앞을 막아섰다.
입구를 지키던 경찰이 “아직 주니어 선수라 영상은 없는 것 같다”며 협조를 구했지만, 시위대는 “왜 꼭 안에 있는 공이어야 하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한 선수가 두 손을 비비며 “제발요”라고 애원한 끝에야 간신히 길이 열렸다.
10시 24분쯤 선수들이 공이 담긴 수레와 훈련용 비닐백을 들고 나오자, 시위 참가자들이 재차 몰려들어 “부정선거 증거물인 투표용지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소지품 검사를 강행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동행한 감독은 “시위가 단기간에 끝나면 기다리겠지만 수주가 걸린다면 국가대표팀 훈련 차질로 인한 손해를 감당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장을 취재하던 외신기자도 시위대의 타깃이 됐다.
경기장 앞에서 중국어로 추정되는 언어로 카메라 생중계를 하던 기자를 시위 참가자 20여 명이 둥그렇게 에워싸고 “중국인 아니냐”, “위장한 것 같아 의심스럽다”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만 소속 기자임이 확인된 후에야 포위가 풀렸다.
경찰은 한국기자협회 소속 취재진 폭행 사건을 비롯해 기동대 인력을 향한 욕설 및 물리적 충돌, 온라인 조롱 행위에 대해 예외 없는 엄중 대처를 예고했다.
◆ 이재명 대통령 “어처구니없는 일”…선관위 개혁 신호탄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며 선관위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첨단, 모범적 민주국가 위상을 한순간에 깡그리 망가뜨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민주주의 발전도가 낮은 국가들이 봐도 상상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일각의 ‘부정선거론’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끊임없는 선동과 세뇌를 통해 세력화 수단으로 삼는 것과,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투표를 못 할 수가 있느냐’는 정당한 문제 제기는 전혀 다르다”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사태 초기 안일했던 대응도 되돌아봤다. “초기에는 ‘열몇 명 투표 못 한 것이 결과에 큰 영향은 없지 않나’ 생각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주권 감수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했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문제를 제기한 청년들을 향해서는 “참으로 귀하고 존경할 만하다”고 치켜세웠다.
이 대통령은 핵심 과제로 선관위의 폐쇄성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 대통령은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 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 났다”며 “근본적 문제가 있는지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무의 한계를 넘어, 헌법상 독립 기관이라는 방패막이 뒤에서 외부 견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선관위의 구조적 모순을 폭발시킨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구글의 최신 빅데이터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선거 직후 ‘선관위 직무유기’, ‘감사원 감사 권한’에 대한 국민적 검색량이 폭증하며 투명한 선거 관리에 대한 요구가 임계점을 돌파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사태 발생 후 청와대가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자, 향후 감사원법 개정을 포함한 선관위 전면 개혁 논의의 강력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