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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슈퍼컴, 한국 기술 없이는 불가능”… 몸값 높아진 K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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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 젠슨 황 방한이 남긴 것

단순히 부품 거래 관계 넘어서
피지컬AI·인프라 구축 동반자로
글로벌 AI산업 전반 영향력 확대

엔비디아 플랫폼에 더 깊게 연결
업황 변동 땐 함께 휘청일 수도
독자적 생태계 이중전략 필요

“엔비디아가 한국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인공지능(AI) 산업을 만들고 생태계를 조성한 것이다. AI 슈퍼컴퓨터는 한국의 기술 없이는 구축이 불가능한 만큼, 같이 사업을 키워 나가겠다.”

4박5일간의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떠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출국 전 남긴 말이다. 황 CEO의 발언에는 이번 방한이 우리 산업계에 남긴 의미와 과제가 모두 담겨 있다. 황 CEO는 한국 기업과의 협업이 필수임을 강조하면서도, AI 패권은 관련 생태계를 구축한 엔비디아에 있음을 암시했다. 전문가들은 협력을 통해 세계 AI 시장을 적극 공략하되, 엔비디아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4박5일 동안 바쁜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황 CEO가 지난 8일 귀국하기 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현대차 제공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4박5일 동안 바쁜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황 CEO가 지난 8일 귀국하기 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현대차 제공

9일 재계에 따르면 황 CEO는 방한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현대차, LG, 네이버, 두산 등 국내 주요 업종별 기업들을 두루 만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제품 판매와 공급 여부를 논의하던 기존 만남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동안 황 CEO에게 한국 기업은 메모리 반도체를 납품하는 공급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이거나 자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가는 고객사(네이버)였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AI 반도체를 넘어 로봇·자율주행·데이터센터·통신 인프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한국 기업들은 단순히 공급망 참여자를 넘어 AI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황 CEO가 구상 중인 사업을 실현하려면 고도의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과 상당한 수준의 제조 역량을 함께 보유한 기업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가 두 가지 역량을 모두 갖춘 한국 기업들을 동반자로 선택한 이유다. 황 CEO는 SK그룹, 네이버와 AI 모델의 학습·추론부터 서비스 구동까지 차세대 인프라 ‘AI 팩토리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LG와 두산은 엔비디아의 로봇 개발에 함께하고,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을 포함한 모빌리티 사업에서 힘을 모을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공동개발을 추진한다. 재계 관계자는 “AI 선두 기업인 엔비디아와 손을 잡은 덕에 국내 산업계가 메모리를 넘어 세계 AI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우리 산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특히 국내 AI 기업들이 엔비디아 플랫폼에 더욱 깊게 연결되면서 ‘엔비디아 생태계 종속’이라는 구조적 과제가 함께 떠올랐다. 이번에 발표된 AI 협력 사업들은 대부분 엔비디아의 컴퓨팅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위에서 구현된다는 점에서 엔비디아 생태계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귀국하기 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LG그룹 제공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귀국하기 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LG그룹 제공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귀국하기 전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네이버 제공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귀국하기 전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네이버 제공

엔비디아가 주도권을 쥐고 한국 기업들이 따라가는 형국으로 국내 기업이 ‘AI 하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주도권을 내준 상태에서 엔비디아의 사업 상황이 나빠질 경우 그 충격은 국내 기업에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AI 선두 기업이긴 하지만 패권을 차지하진 못한 상태다. 경쟁자들은 엔비디아의 GPU와 AI 플랫폼에 대항하는 서비스를 내놓으며 맹추격하고 있다. 구글은 GPU를 대체할 텐서처리장치(TPU)를 개발 중이고, 미국 스타트업 세레브라스는 HBM을 사용하지 않는 인공지능 칩을 내놨다. 만약 이들이 엔비디아를 제치고 차세대 AI 산업 패권을 차지한다면, 엔비디아에 발이 묶인 국내 기업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영달 뉴욕시립대 교수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춰야만 AI 시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이 가진 반도체와 통신망, 제조 데이터, 자동차, 로보틱스 등 역량을 결합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춘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