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소년이 게를 잡았다. 가족과 함께 간 선유도, 그 바위틈이었다. 겉이 빨갛게 익은 도둑게, 섬마을 부엌에 들어 밥을 훔쳐 먹는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년은 게를 페트병에 담아 집으로 데려왔다.
게는 숨어야 산다. 아가미로 숨을 쉬어 몸이 마르면 죽고, 껍데기를 벗는 동안엔 살이 물러 무방비해진다. 흙벽에 굴을 파고 어둠에 드는 것이 도둑게의 생존법이다. 게는 매끄러운 페트병 벽을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게가 살 자리가 아니었다.
소년은 유리 수조에 돌을 쌓았다. 모터를 묻어 물을 흘렸다. 그 위에 식물을 얹고, 돌과 돌 사이에 게가 들 그늘을 뒀다. 용돈 몇천 원으로 수초를 사다 심었다. 도둑게는 거기서 먹고 잤다. 가재를 넣자 달려들어 부숴 먹을 만큼 자랐다. 눈이 초롱초롱하다고 초롱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초롱이는 서너 해를 살다 죽었다. 열한 살이 처음 차린 밥자리였다.
20여년이 지났다. 소년은 이제 삭작가(박웅택·32)로 불린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비오토프 갤러리’(BIOTOPE GALLERY)에서 비바리움을 짓는다. 비오토프는 사람이 만든 생태 서식지를 뜻한다. 자연의 한 조각을 잘라 유리 안에 옮기고, 거기에 다시 살 자리를 만든다.
작업은 가장 낮은 데서 시작한다. 흙 위에 이끼를 얹으면 습기가 잡히고, 그제야 다른 식물이 뿌리를 내린다. 이끼는 꽃도 씨앗도 없다. 줄기 끝에 포자주머니를 올려 멀리 씨를 보낸다. 그 기관의 이름이 ‘삭’이다. “이끼에 피는 꽃이죠.” 그는 삭을 활동명으로 삼았다.
이끼가 바닥을 잡으면 유목을 세우고 식물을 심는다. 삭작가는 식물이 자랄 방향을 미리 그린다. 반년 뒤 무성해질 모습을 내다보고 빈자리를 설계한다. 이 덩굴은 저 유목을 타고 오르고, 저 양치는 옆으로 퍼져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생명의 부피를 헤아리는 일은 기다림을 설계하는 일이다. “식물이 제 속도로 자리를 메우는 것, 그게 이 세계의 또 다른 매력이에요.” 삭이 말했다.
소년이 자라자, 그가 짓는 자리도 함께 커졌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삭작가는 3학년 때 원룸에서 이끼 작품을 만들어 팔았다. 모터 수리에 용이한 순환 구조를 짜 올렸고, 그 ‘빌드’를 영상으로 공개했다. “그걸 공개한 게 가장 큰 보람이었어요.” 이제는 외국인 시청자들도 그의 빌드를 따라 짓는다. 작년 6월에는 삼성과 협업해 6m짜리 작품을 지었다. 가전제품 전시장에서 디스플레이 화질을 보여주는 시연 영상에 쓰였다. 페트병 하나 채우지 못하던 손이, 사람 키의 몇 배에 이르는 유리장 안에 정글 생태계 하나를 세웠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한국인 조경가가 되는 겁니다.” 그는 비바리움도 조경이라고 말한다. “유리장 안이든, 도시의 빈 땅이든, 식물로 공간을 짓는 건 똑같거든요.” 페트병 속 게에게 흙과 그늘을 지어주던 열한 살 손이, 이제 6m 유리장을 짓는다. 그가 만든 자리는 누군가의 거실로 간다. 마당 없는 집에서, 사람들은 그 작은 자리가 자라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