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를 중심으로 호남 권역에 기업들의 반도체 시설 투자가 본격화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전남 광주와 장성 사이의 ‘첨단 3지구’ 일대에 반도체 후공정 중 하나인 ‘패키징’을 담당할 공장이 지어질 것이란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설까지 확산되고 있다. 아직 확정발표만 나지 않았을 뿐, 이미 지역에선 반도체 공장 유치가 기정사실화 된 분위기다. 다만,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투자 결정 주체인 기업이 신중을 기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 광주에 패키징 짓나… 전공정 대비 부담 적어 가능성 UP
11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 거점을 광주 전남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구체적인 투자 방안을 담은 소문이 돌고 있다. 광주와 장성 사이인 첨단 3지구 일대에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반도체의 기본재료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반도체 전공정 공장은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어 광주에는 후공정 공장이 지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후공정은 기업들의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소문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지역 정치권에서 제기된 주장은 경기도 용인에 투자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를 호남에 옮겨 달란 것이었다. 수도권이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감당할 수 없기에, 재생에너지 시설이 풍부한 호남 지역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였다. 업계에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실현이 힘들다’고 내다봤다. 고급 설계인력과 풍부한 용수라는 수도권의 강점을 호남 지역이 대체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도체 생산 시설의 호남 이전은 힘들다는 전망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호남에 투자 예정인 공장 시설이 후공정 패키징을 담당하는 곳이라서다. 반도체는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원료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겨 전기 신호가 오가는 통로를 만들어,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전력과 물을 소비한다. 웨이퍼에 회로를 새겨놓는 과정을 설계할 연구 인력도 필수다. 흔히 반도체 생산의 ‘3박자’라 불리는 전력과 인력, 용수가 사실상 이 과정 때문에 필요하다. 전공정을 담당하는 ‘팹’ 시설의 입지조건이 까다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생산된 반도체 소자를 전자장비 용으로 포장하는 후공정은 전공정 대비 전력과 용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덕분에 입지 조건이 다소 부족한 곳에도 투자가 가능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도 패키징을 비롯한 일부 후공정 시설을 호남에 둘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전남도는 후공정 패키징 공장이 들어서면 500∼2000명 규모의 고용 효과와 함께 막대한 지방세 수입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강위원 전남도 경제부지사도 페이스북에 “전남 공직자들과 함께 반도체 시대 개막을 위해 온몸의 에너지를 갈아 넣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 중앙정부의 확고부동한 ‘균형성장’ 철학, 그리고 ‘호남 대전환과 대성장’이라는 국가적 의지를 온몸으로 뒷받침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후공정 중요도 높아져…기업들은 신중론
다만, 아직 기업들은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호남 반도체 투자론이 불거지자, 기업들은 말을 아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부와의 논의 여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했고,지방 투자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비교적 덜 까다로운 후공정 공장을 짓더라도,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신중히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을 포함한 고성능 메모리가 중요해지면서 후공정 패키징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패키징을 얼마나 효율화있게 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성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후공정 패키징 공장의 위치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다.
◆최태원 “차기 반도체 공장은 해외도 가능”
호남 투자론이 나오는 상황 속,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해외 지역도 반도체 공장 후보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최 회장은 지난 10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 대담 참석 뒤 기자들과 만나 용인클러스터 반도체 공장 4기 완공 뒤 차기 공장입지에 관한 질문에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어딘가로 가지 않을 수는 없고 준비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SK하이닉스 공장의 해외 진출 가능성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안 되면 해외라도 줘야 하는 상황 아니냐”면서 “‘무조건 한국에만 짓겠다’ 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시장이 그다음에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