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송악읍(松岳邑)에 기지시리(機池市里)라는 마을이 있다. 읍사무소가 있는 송악은 몰라도 기지시는 안다고 할 정도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명이다.
기지시(機池市)라는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삽교천 방조제 건설 이전에 삽교천의 수운을 이용해 주변 상인이 모두 모이는 큰 시장이 이 지역에 있었는데, 이런 이유로 시장을 뜻하는 한자인 ‘시(市)’를 붙여 틀모시로 불렀고 이것을 한자로 바꾼 것이 바로 기지시(機池市)가 되었다”는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지(機池)’의 한자 ‘틀 기(機), 못 지(池)’와 ‘틀모시’라는 고유 지명을 고려하면 이 지역의 본래 이름은 ‘틀못’이었고 ‘기지(機池)’는 이를 한자로 적은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지역의 민속 풍속으로 ‘기지시 줄다리기’가 유명한데 이 줄다리기 전설에 “기지시(機池市)가 옥녀직금혈(玉女織金穴)이므로 베를 짜서 마전하는 것을 형상화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틀못’ 혹은 ‘틀모시’라는 지명을 한자로 쓰는 과정에 기지시(機池市)라는 지명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우리 지명을 찾아보면 기지(機池)라는 이름의 지명이 곳곳에 존재한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도 기지리(機池里)가 있는데 “산 모양이 베틀처럼 생기고 그 아래에 못이 있어서 ‘틀못’, ‘틀못이’, ‘틀무시’ 또는 ‘기지(機池)’라고 불렀다”고 한다. 충북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도 기지제언(機池堤堰)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관개 시설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고 일제강점기(1944)에 저수지로 지목이 변경되었다가 2010년 이래 현재까지 관개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도 기지리(機池里)가 있었다. 이 마을 논에 두레 10개로 퍼도 마르지 않을 이름난 샘이 있었다고 하는데, 샘이 무너지지 않도록 둘레에 나무 빈지를 쌓았던 것이 베틀처럼 보인다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틀모시(機池里)’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천북면에 있던 조선 시대의 저수지 중에도 ‘기지제(機池堤)’라는 이름이 있었다 한다. 둘레가 1880척(600m), 수심 9척(3m)이었다 하니 그 규모가 작지 않은데 지금은 없어져 그저 너른 들로 변했다.
종합해 보면, ‘機池(기지)’ 혹은 ‘機池市(기지시)’라는 지명은 모두 ‘틀못’ 혹은 ‘틀모시’라는 우리 전통 지명을 한자화하는 과정에 자리 잡은 것들이다. ‘틀못’이란 “베틀 모양으로 흙담을 쌓아서 만든 저수지”로 먼 옛날부터 농사에 쓸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의 지명이고 이를 한자로 쓰다 보니 ‘기지’라든지 ‘기지시’가 된 것이다. 군부대(기지)가 있었다느니 최초의 시(市)라느니 근처에 시장이 있었다느니 하는 민간어원보다는 ‘틀못’ 혹은 ‘베틀못’이라는 원래 지명을 되찾을 때 지역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지역 정책 마련도 가능해질 것이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