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강영숙의이매진] 진짜 숲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1990년대, 아주 일찍부터 환경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살아온 친구를 만났다. 그간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라, 친구로부터 뭔가 좀 희망적인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후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친구 역시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게 아닐까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날 친구와 헤어진 뒤 집에 돌아가 예전에 읽었던 책을 한 권 찾느라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아직까지 그 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주말 내내 그 책의 행방을 찾느라 집 안 구석구석 청소를 해야만 했다. 그 책은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라는 제목의 전후 일본 단편소설선 중의 하나다.

소설 스토리는 비교적 쉽게 떠오른다. 대학 때 동기였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도시를 등지고 숲으로 들어가 숨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오래전 숲으로 들어간 친구를 찾아 숲으로 간다. 먼저 숲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동안 신분을 숨긴 채 산림감시원을 하며 살았다. 나머지 한 사람도 이제 숲으로 갔고 두 사람은 결국 숲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한때 열정이 넘쳤던 지식인으로 전쟁 후 일본 사회에 대한 환멸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환멸의 시기가 다를 뿐 그들을 숲으로 가게 했던 그 정동은 유사하게 느껴진다. 일본의 시코쿠섬 지역 에이메현의 깊은 산속에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대화가 진전될수록 더 깊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깊은 숲의 소리를 듣는 그런 소설이다.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브라질풍의 포르투갈어’라는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렇다면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에서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나라는 질문과 닿는다. 그러나 그 질문마저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깊은 산골의 울창한 숲이다.

숲은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현실에서 지친 누군가를 숲으로 보내버리는 설정을 작가들은 흔하게 하기도 한다. 숲은 그만큼 신비하고 안전한 곳일 수 있다. 지친 누군가, 현실에 환멸을 느낀 누군가 깊은 숲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그게 당신일 수도, 우리일 수도 있다. 도시를 등지고 가족을 등지고 고립을 선택한 누군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임계점에 이르렀을 수 있다. 그래서 숲은 더욱 더 지켜져야 한다.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에 따르면 사람 없이 500년만 지나면 진짜 숲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진짜 숲이란? 새삼 궁금해진다. 책을 찾게 되면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강영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