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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 첫 승 지켜낸 박진섭…3부 리그 딛고 이뤄낸 ‘12분의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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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직전 멈춰 선 프로의 꿈
3부 리그가 키운 멀티 수비수
서른을 넘겨 밟은 월드컵 무대

지난 12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한국과 체코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이 2-1로 앞선 후반 39분, 홍명보 감독은 수비 강화를 위해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기 막판 체코는 장신 선수들을 앞세워 한국의 골문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교체 투입된 수비수는 특유의 점프력과 위치 선정으로 공중볼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다. 한국은 끝내 리드를 지켜냈다.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6년 만의 월드컵 1차전 승리였다.

 

박진섭이 자신의 첫 월드컵 출전 무대에서 승리를 거둔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 AP 뉴시스
박진섭이 자신의 첫 월드컵 출전 무대에서 승리를 거둔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 AP 뉴시스

 

이 수비수가 그라운드를 밟은 시간은 추가시간을 포함해 단 12분. 짧은 출전이었지만,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는 K리그 무대에도 없었다. 프로 입단은 한 차례 무산됐고, 성인 축구를 실업팀에서 시작했다. 박진섭(30).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의 길은 멀고 더뎠다.

 

계약 직전, 프로의 문이 닫혔다

 

박진섭은 전주에서 자랐다. 전주조촌초, 전주해성중, 전주공고를 거치며 성장했다. 이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서 프로의 꿈을 키웠다.

 

대학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골문 앞을 매섭게 파고들며 U리그 권역 득점왕에 올랐다. 2014년 11경기 9골, 2016년 12경기 10골.

 

대학 3학년을 마친 무렵, 프로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대전 시티즌과 연습경기를 치렀고, 당시 최문식 감독은 그를 눈여겨봤다. 입단을 확신한 그는 일찌감치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사이 감독이 바뀌었다. 새 감독 아래에서 계약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열렸던 문이 다시 닫혔다.

 

프로의 꿈은 미뤄졌지만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2017년 그는 실업팀 대전 코레일에서 성인 축구를 시작했다. K리그가 아니라 그 아래, 당시 3부 리그 격이었던 내셔널리그였다.

 

그곳에서도 골은 멈추지 않았다. FA컵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팀을 32강에 올렸고, 리그에서도 연이어 해결사로 나섰다. 그해 25경기에 나서 11골. 무명의 실업 선수는 그렇게 자신을 증명했다.

 

전북 현대에서 활약하던 박진섭(가운데).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오가며 팀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다. 박진섭 SNS
전북 현대에서 활약하던 박진섭(가운데).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오가며 팀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다. 박진섭 SNS

 

실업에서 키운 무기, 골잡이에서 수비수로

 

이듬해인 2018년 그는 K리그2 안산 그리너스로 향하며 마침내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리그를 한 계단씩 올라가는 사이, 그의 자리는 점점 더 뒤로 향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필요할 땐 센터백까지. 공격수로 출발했던 선수는 어느새 뒷문을 책임지는 멀티 수비 자원이 돼 있었다.

 

2020년에는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한 대전 하나 시티즌 유니폼을 입었다. 주장 완장을 찰 만큼 팀의 신뢰가 두터웠고, 이듬해 K리그2 베스트 11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올렸다.

 

2부 리그에서 쌓은 안정감은 곧 1부 팀의 부름으로 이어졌다. 박진섭은 2022시즌을 앞두고 고향 팀인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전북은 FA컵을 들어 올렸고,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진섭은 그 중심에서 센터백으로 K리그1 베스트 11에 올랐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 번, 센터백으로 또 한 번. 서로 다른 자리에서 두 번 그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꼽혔다.

 

늦게 찾아온 태극마크, 그리고 월드컵

 

태극마크는 한참 뒤에야 찾아왔다. 연령별 대표팀은 물론 성인 국가대표팀과도 오랫동안 인연이 없었다. 

 

그에게 처음 찾아온 대표팀 기회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와일드카드로 발탁된 그는 대전 시절 은사였던 황선홍 감독과 대표팀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생애 첫 태극마크를 화려하게 신고했다.

 

금메달은 단순한 영광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상무 입대가 무산됐던 그에게 아시안게임은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4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박진섭이 팀 세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4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박진섭이 팀 세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그 뒤로 대표팀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2023 AFC 아시안컵을 거쳤고, 2024년 3월 월드컵 2차 예선 태국 원정에서는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로 들어간 그는 후반 37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민재가 머리로 연결한 공을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생애 첫 A매치 골이자 팀의 3-0 완승을 마무리한 쐐기골이었다. 3부 리그에서 출발한 무명이 태극마크를 달고 골까지 넣은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박진섭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헤딩을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뉴스1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박진섭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헤딩을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뉴스1

 

밤잠 설친 간절함 끝에…마침내 허락된 ‘12분의 기적’

 

K리그 최고 수비수로 정점을 찍은 그는 올해 1월 중국 슈퍼리그 저장 FC로 무대를 옮기며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굴곡진 커리어를 버텨낸 끝에 마주한 종착지는 결국 꿈에 그리던 최종 월드컵 명단이었다.

 

사실 박진섭은 명단 발표 직전까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스포티비와의 인터뷰에서 “혹시나 명단에 없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지만, 발표 2~3일 전부터는 저도 모르게 잠을 잘 못 잤다”고 털어놨다.

 

이어 “명단에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 이뤄졌구나’하고 소리를 질렀다”며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대표팀에서의 쓰임은 분명하다. 수비형 미드필더도, 센터백도 볼 수 있는 선수. 48개국 체제로 변수가 많아진 이번 대회에서 홍명보호에게 그는 꼭 필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첫 월드컵 무대는 길지 않았다. 조별리그 1차전 체코전 후반 막판에 교체 투입돼 그라운드를 누빈 시간은 추가시간을 포함해 단 12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출전 시간이 아니었다. 프로 입단이 무산됐던 선수, 3부 리그에서 다시 시작한 선수 그리고 서른을 넘겨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은 선수.

 

박진섭의 12분은 짧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누구보다 길었다. 월드컵을 꿈꾸던 무명 선수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