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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한국을 현실로 이끈 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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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EU, 北 우크라戰 참전 강력규탄 공동성명
대북 이상론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계기 되길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그나마 세간의 관심을 끈 쟁점은 러시아와 북한을 비난한 한국과 유럽연합의 공동 성명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비난함과 동시에 북한의 참전을 강력하게 규탄했으며, 국제사회가 북한을 결코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유럽 측의 강한 요청을 한국이 어렵게 받아들여 공동 성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 수위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향하는 한국과 유럽이 국제무대에 명확한 공동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방향이다.

북·중·러의 관계는 기존 북한과 러시아의 침략 동맹에 이어 지난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탄탄한 삼각형을 형성하는 중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복귀한 작년부터 미국·유럽·동아시아의 삼각형은 크게 훼손되어 관계의 끈이 점점 느슨해지는 중이다. 주로 미국을 통해 연결되었던 동아시아와 유럽이 이제는 직접적인 관계 강화에 나설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동아시아와 유럽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안보를 상당 부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런 상황에서 두 지역 내부의 협력 강화와 더불어 지역 간 협력은 장기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핵심적인 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한·EU 정상회의에서 안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협력이 논의된 이유이며 향후 더 적극적인 한국의 접근이 필요한 배경이다. 강력한 협력의 틀이 존재하는 유럽에 비해 한국은 중국이라는 거인 앞에 홀로 서 있는 위험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와 유럽 간 협력을 논의하는 방향도 고려할 만하다.

한·EU 공동 성명에 대한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도 주목된다. 북한은 이 성명을 주권침해이자 적대행위로 규정하면서 “한국의 집권자가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고 비난했다. 이에 덧붙여 남북 관계는 ‘영원히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일 수밖에 없다며 지난 3월 개헌으로 완성된 두 국가론을 강조했다. 북한의 발언이지만 여기에는 부분적 진실이 담겨 있다.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한 민족이라도 공산을 빙자한 세습 독재와 개방적 민주 체제의 관계란 기본으로 적대적인 성격을 갖는다.

실제 북한의 두 국가론은 화합하기에는 너무나도 대립적인 남북 체제의 성격을 강조해 온 남한 보수 세력의 시각과 맞닿아 있다. 체제의 성격과 상관없이 하나의 민족공동체이기에 통일을 지향한다는 과거 북한과 현재 남한 진보 세력의 이상론은 북한의 두 국가론으로 설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손뼉을 치려면 두 손이 있어야 하는데 한 손이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이번 순방에서 살며시 드러난 민주당 정부의 현실적 대응이 그간 주장해 온 이상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국제사회의 규칙을 짓밟으며 침략 전쟁에 동참하는 북한은 규탄받아 마땅한 대상이다. 아무리 교류를 통해 유혹하고 변화시키려 해도 러시아나 북한과 같은 호전적 권위주의 세력은 근본이 바뀌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까이서 먼저 깨달은 유럽이 한국의 손을 잡고 현실의 세계로 이끈 셈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