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부분은 정확한 정체를 잘 모르지만, 한국인이 즐겨 먹는 외식 메뉴에 자주 사용되는 해산물이 있다. 바로 ‘훔볼트 오징어’다. 몸집이 커 ‘대왕오징어’로 불리기도 하고, 다리 모양이 문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가문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며 문어로 오인되기도 한다. 훔볼트 오징어의 특징과 활용되는 요리, 그리고 혼란을 부르는 해산물 명칭 문제를 짚어봤다.
◆ 사납고 식용 선호도 낮아…해외에선 외면받는 훔볼트 오징어
훔볼트 오징어는 개체별 편차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약 45kg이 넘는 몸무게와 2m에 가까운 몸길이를 가지고 있다. 성질이 사납기로 악명이 높아 ‘붉은 악마’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치악력이 500kg이 넘어 웬만한 상어보다 강하다고 알려졌다. 이는 코끼리의 뼈를 으스러뜨릴 수 있을 만한 위력이다. 이빨 자체도 날카로워 한 번 물은 먹이는 놓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이버나 낚시꾼들을 공격한 사례도 보고된다. 외국의 한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는 치악력 시험을 위해 준비한 악력계가 훔볼트 오징어의 이빨에 손상되기도 했다.
다만 훔볼트 오징어가 모든 상황에서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먹이를 사냥하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 난폭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에는 다른 생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호기심을 드러내는 정도로 전해진다. 또 주로 심야 시간대에 사냥하고 활동 수심도 130~200m 부근에 집중돼 있어, 다이버처럼 직접 바다에 들어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훔볼트 오징어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원물 상태의 훔볼트 오징어는 가공 없이는 식용 선호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강한 신맛과 질긴 식감 때문에 해외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염화암모늄 성분 탓에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나고 산미도 강한 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주산지인 멕시코, 페루, 칠레 등지에서는 대부분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훔볼트 오징어를 꾸준히 수입하고 활용해 온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훔볼트 오징어의 다양한 가공기술과 조리법을 발전시키며 신맛을 줄이는 가공법을 정착시켰다.
◆ 한국에서 사랑받는 훔볼트 오징어…‘이것’ 재료로 많이 쓰인다
한국에서 훔볼트 오징어는 다양한 외식 메뉴에 폭넓게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분식집의 오징어튀김과 중국집의 짬뽕, 팔보채 등에 들어간다. 오징어튀김 속 투명하고 길쭉한 오징어는 대부분 훔볼트 오징어의 몸통 부위다. 중화요리에서는 주로 짬뽕에 사용되며, 대체로 동전 크기 정도로 잘게 썰어 넣는다.
우리에게 ‘타코야끼’로 익숙한 일본식 간식 문어빵도 예외는 아니다. 원어의 뜻대로라면 문어가 들어가는 것이 맞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타코야끼 상당수는 훔볼트 오징어 다리를 사용해 만든다. 가장 큰 이유는 원가 부담이다. 모양이 비슷하고 가격 경쟁력도 있어 문어의 대체재로 널리 활용돼 왔다.
◆ 문어가 아닌데 ‘가문어’로…소비자 소비 판단 흐려
훔볼트 오징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명칭이 혼용되면서 발생한다. 훔볼트 오징어의 별칭 가문어(비공식 유통명)는 ‘가짜 문어’란 뜻이다. 빨간오징어과에 속한 두족류로 학술적으로 문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문어과 동물의 한 종류라고 오해를 낳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명칭 혼재는 소비자의 정상적인 소비 판단을 왜곡하고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메뉴판이나 제품 설명에 가문어라는 표현이 사용될 경우,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문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실제 사용되는 식재료가 문어가 아님에도, 명칭 하나만으로 식재료의 성격과 품질을 오인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타코야끼의 경우 많은 매장이 훔볼트 오징어 다리를 사용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문어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특히 유통업계나 외식업계에서는 문어라는 이름이 주는 고급 이미지와 선호도를 고려해, 가문어라는 표현이 관행처럼 사용돼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실제로 어떤 종의 해산물을 섭취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기 어려워지고, 정상적인 소비 선택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로 연결된다.
◆ 훔볼트 오징어·가문어·대왕오징어…혼란의 유통 현장
훔볼트 오징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개념의 명칭까지 무분별하게 혼용되면서 소비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빨간오징어과에 속한 훔볼트 오징어와 달리 ‘대왕오징어’로 불리는 생물은 ‘대왕오징어과’에 속한 전혀 다른 종이다. 훔볼트 오징어와는 분류학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구분된다.
문제는 유통 과정에서 이 구분이 명확히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훔볼트 오징어가 가문어라는 유통명으로 판매되는 과정에서 일부 원산지 표시나 원재료명에는 대왕오징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식이다. 이는 훔볼트 오징어를 대왕오징어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보다 단순히 크기가 크다는 이유로 통칭처럼 잘못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에 가깝다. 소비자로서는 전혀 다른 종명이 혼재돼 표시되는 셈이어서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훔볼트 오징어(Dosidicus gigas)’와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는 완전히 다름에도 훔볼트 오징어가 대왕오징어로 불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문어’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학명이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박중기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명예교수는 “가문어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라며, “훔볼트 오징어와 대왕오징어도 서로 다른 종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왕오징어는 식용이 불가능하다"며 “‘대형’의 혹은 ‘큰 것’을 의미하는 ‘Gigas’라는 훔볼트 오징어의 학명이 전해지면서, 대왕오징어와 명칭이 혼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