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테슬라 달리는데… ‘규제 브레이크’ 걸린 K자율주행 [S 스토리-미래 산업 주도권 걸린 자율주행]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美·中, 국가 차원서 총력 지원
모빌리티 혁신 넘어 도시·노동구조 변화
FTA 따라 미국산 수입차 규제 적용 안돼
테슬라, 韓전역 거리 누비며 데이터 수집
누적 주행 160억㎞… 투자금도 양국 집중

국산차, 시내도 못달려 ‘역차별’
실증구역만 다닐수 있어 주행 1306만㎞
고속도로서 차선 변경도 불허… 제약 많아
현대차, 로보택시 상용화 등 추격전 부심
“규제 법령 손질… 통합 컨트롤타워 필요”

“자율주행은 자동차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 경쟁력의 문제다.”

자율주행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인공지능(AI)이 운전대를 대신 잡아주는 정도의 변화를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넘어 교통과 도시·노동 구조를 바꾸는 차세대 플랫폼 기술로 평가한다. 미국과 중국이 이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는 것도 미래 산업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패권 경쟁의 일환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자동차 기술기업 앱티브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 ‘모셔널’이 운영하는 아이오닉5 로보택시가 지난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달리고 있다. 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자동차 기술기업 앱티브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 ‘모셔널’이 운영하는 아이오닉5 로보택시가 지난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달리고 있다. 현대차 제공

그런데 미국 빅테크(거대기술기업)인 테슬라가 100억마일(약 160억㎞)이 넘는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중국 기업들이 국가 차원의 총력 지원을 받으며 기반을 쌓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각종 규제에 묶여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미래 모빌리티 산업 주도권을 놓치는 것은 물론, 이동 서비스와 물류, 데이터 산업 등에서 창출될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해외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모빌리티 혁신… 도시 생태계 개편

차량이 스스로 움직이는 순간 택시, 버스, 물류, 배달, 주차, 보험 등 교통 시스템 전체가 개편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완전 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언제든 스스로 이동하는 차를 타고 주차 걱정 없이 내리는 방식의 차량 공유 문화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도로 설계와 대중교통 체계가 개편되고, 주차 수요 감소로 도심 주차장이 상업 시설로 바뀌는 변화도 동반될 수 있다.

100여년 전 마차에서 자동차로 이동수단이 바뀌며 ‘마부’가 사라진 것과 같은 노동시장 변화도 불가피하다. 택시·버스·화물차·기사 대신에 무인 물류·배달이 활성화하면서 AI학습, 원격 관제, 로보택시 관리 등의 분야에 새 일자리와 서비스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서비스는 초고속 통신망과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된 스마트 도시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그만큼 기술 개발에 앞선 국가·기업이 이 ‘똑똑한 도시’에 필요한 각종 기술 표준과 부가가치를 가져가게 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시대에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생태계의 표준을 선점하며 견고한 성채를 쌓은 것처럼, 자율주행 시대에도 차량용 운영체제(OS)와 지도, 데이터 플랫폼을 선점한 기업이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것이다. 자율주행차와 신호체계, 주차시설, 물류망을 연결하는 기술 표준을 특정 국가나 기업이 선점할 경우 후발 주자는 그들이 만든 규칙에 맞춰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규제 강한 韓, 경쟁 뒤처져

도시 생활의 혁신 키를 쥔 자율주행 AI의 성능은 얼마나 많은 실제 도로 데이터를 학습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테슬라가 전 세계 지역을 누비며 160억㎞의 누적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는 동안, 각종 규제에 묶여 지난해 11월 기준 테슬라의 0.08% 수준인 1306만㎞ 확보에 그쳤다.

미국산 테슬라 차량은 심지어 한국 시내·고속도로에서 차선을 요리조리 바꾸는 등 자유롭게 달리며 정보를 쌓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수입차에는 한국의 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4200여대의 테슬라 자율주행 차량은 규제를 대폭 걷어낸 미국 본토 규정에 맞춰 사실상 한국 전역을 누비며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한다. 영상 원본도 제약 없이 미국 본사에 보낼 수 있다.

반면 국산 자율주행차는 정해진 실증 구역만 다닐 수 있다. 시내 도로 주행이 불가능하고, 고속도로에서도 차선 변경이 안 된다. 현행 안전기준이 자율주행 기능을 ‘중앙분리대가 있고 보행자 통행이 금지된 도로’에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차량이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는 기능도 사실상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처럼 데이터를 자유롭게 수집할 수도 없다. 국내 기업들은 개인정보 보호 규정에 따라 주행 과정에서 촬영된 행인 얼굴이나 차량 번호판 등을 비식별 처리해야 해 AI 학습에 필요한 실제 도로 데이터 활용에 제약을 받는다.

◆“규제 혁신, 컨트롤타워 구축해야”

후발 주자인 데다 규제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투자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에 따르면 올해 1∼4월 집계된 글로벌 자율주행 펀드 투자액(약 34조7000억원)의 82.4%가 미국, 9.0%가 중국에 집중됐다. 한국을 향한 투자금은 0.7%에 불과했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업 스스로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화웨이와 샤오펑의 자율주행 관련 투자 계획 규모는 각각 17조원, 3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자동차 기술기업 앱티브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 ‘모셔널’을 통한 로보택시 상용화와 자율주행·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전환, 엔비디아와의 협업 등 자율주행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2027년 도심형 레벨 2+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하고, 2029년 레벨 2++ 기술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도 광주에 자율주행차 200대를 투입해 데이터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미국과 중국이 축적한 데이터·자본 격차를 만회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제 체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황성호 전 한국자동차공학회 회장은 “실증이 이뤄진 부분에는 선제적 승인 후 규제를 보완하는 선도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금은 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경찰청 5개 부처가 각각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혁신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